한 고을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 금성대군과 순흥의 단종복위운동
1457년 금성대군은 순흥에서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 했다. 거사가 발각되자 세조 정권은 사람만 처벌하지 않았다. 순흥부를 없애고 관아를 허문 뒤 고을을 셋으로 찢었다. 마지막 단종복위운동과 지도에서 사라진 고을의 226년을 따라간다.
별과 시간과 사랑 이야기
1457년 금성대군은 순흥에서 단종을 다시 왕위에 올리려 했다. 거사가 발각되자 세조 정권은 사람만 처벌하지 않았다. 순흥부를 없애고 관아를 허문 뒤 고을을 셋으로 찢었다. 마지막 단종복위운동과 지도에서 사라진 고을의 226년을 따라간다.
혼노지는 아직 교토에 있다. 다만 1582년의 그 자리에는 없다. 불탄 뒤 이전된 사찰과, 원래 자리의 작은 돌비석, 그리고 한 밤에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난 몇몇 장소들을 짚어본다.
누군가 죽으면 누군가 그 자리에 앉는다. 노부나가의 자리는 비었고, 미쓰히데는 그 자리에 앉지 못했다. 그 자리에 앉은 것은 히데요시가 말한 ‘하루 밤낮 27리’의 질주를 등에 업고 돌아온 남자였다.
그는 천하를 손에 넣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천하를 같이 가지려는 사람은 없었다. 13일 동안, 미쓰히데는 답이 없는 편지를 쓰고 또 썼다.
1582년 6월 1일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의 12시간. 한 사람은 단바의 산을 넘어 동쪽으로 갔고, 다른 한 사람은 교토 한복판의 절에서 다회를 열고 있었다. 두 동선이 한 점에서 만났다.
노부나가 진영의 2인자가 1582년 6월 1일 밤 1만 3천의 군대를 이끌고 갈림길에서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 목적지는 주군이 있는 절 — 혼노지였다.
그는 자신을 제육천마왕이라 불렀다.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사찰을 불태우고 승려를 도륙한 남자는,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 민족에게 독립 전쟁이었던 그 14개월은, 다른 민족에게는 고향을 잃은 대재앙이었다. 70만 명이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는지를 따라간다.
1928년 통곡의 벽 앞 가림막 하나에서 시작해 1947년 유엔 분할 결의까지. 두 민족이 한 땅 위에서 갈라서는 20년을, 벽과 학살과 백서의 순서로 따라간다.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동안 텔아비브 상공에는 이미 이집트 폭격기가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