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2) 알프스를 넘다

빈의 여자아이는 이름이 길었다.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폰 합스부르크로트링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열다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고, 어머니는 이 소녀를 프랑스와의 동맹을 위한 정치의 도구로 삼았다. 유년기는 비교적 행복했으나 교육은 산만했다. 프랑스 동맹이 결정되고 결혼이 정해질 때까지, 그녀는 열네 살까지도 프랑스어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어머니와의 관계는 엄격하고 감정적으로 멀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녀를 무기로 키웠지만, 그렇다고 … 더 읽기

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1) 수레 위의 아침

잠들지 않은 밤 1793년 10월 16일. 파리. 새벽 4시, 콩시에르주리 감옥의 지하 감방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잠들지 못한 채로. 돌벽은 차갑고, 습기는 눅눅하고, 오늘 그녀가 죽는다는 사실은 이미 어제 법정에서 확정됐다. 당시 그녀는 열네 살이었고,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오던 중이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주로 태어나 프랑스 왕세자비가 되러 가는 … 더 읽기

그 자리에 서다 — 로마노프의 현장 일곱 곳

역사적 사건은 추상적인 텍스트가 아니라 구체적인 흙과 벽돌 위에서 벌어진다. 로마노프 제국의 몰락 역시 러시아 지도 위에 선명한 좌표들을 남겼다. 앞서 다룬 일련의 사건들이 거쳐간 현장들을 사건의 순서대로 짚어본다. 황제가 서명을 남긴 기차역부터 일가가 은폐된 채 묻힌 늪지대까지. 어떤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떤 곳은 다른 이름으로 남아 있다. 니콜라이 2세 로마노프 가족 공식 사진 … 더 읽기

새벽 두 시 — 지하실의 20분

1918년 7월 17일 새벽, 열한 명의 일행은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빈 방 지하의 방은 약 6미터 곱하기 5미터. 창문은 하나뿐이었고, 그마저 철창이 걸려 있었다. 벽지가 벗겨진 벽, 줄무늬 장식이 있는 아치형 문.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알렉산드라가 의자가 없다고 불만을 말했다. 유로프스키는 의자 두 개를 가져오게 했다. 황후가 하나에 앉았고, 니콜라이가 알렉세이를 다른 하나에 내려앉힌 … 더 읽기

특별 목적의 집 — 이파티예프 저택의 78일

1918년 4월 30일, 예카테린부르크 역 플랫폼. 기차에서 내린 니콜라이 2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랄 지역 특유의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그를 맞았다. 알렉산드라와 딸 마리아가 뒤를 따라 내렸다. 나머지 자녀들과 수행원들은 2주 뒤에야 합류할 것이었다. 퇴위 이후 이미 세 번의 이감을 겪은 그들이었다. 알렉산드르 궁전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토볼스크를 거쳐, 이제 우랄의 공업 도시 깊숙이. 기차가 멈출 … 더 읽기

왕관을 내려놓은 날 — 300년 제국의 마지막 황제

1894년 가을, 크림반도. 거구의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 때, 방 한구석의 스물여섯 살 청년은 오열했다. 아버지의 죽음보다, 자신에게 떨어질 제국의 왕관이 더 두려웠다. 갑작스럽게 황위에 오른 니콜라이 2세는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황제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제국을 통치하는 법도, 심지어 장관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니콜라이가 일기에 남긴 … 더 읽기

삼전도의 굴욕: 찢은 자와 다시 쓴 자 — 항복 문서 앞에 선 두 신하, 김상헌과 최명길

문서가 바닥에 떨어졌다 1637년 1월, 눈 덮인 남한산성 안 행궁. 한 장의 종이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들어와 통곡하며 그 문서를 찢고 말하기를, “명길이 나라를 망칩니다.” 하니, 명길이 웃으며 말하기를, “대감은 찢으시오. 나는 마땅히 주워 모으겠소.” 하였다. 조선왕조실록과 연려실기술이 공통으로 전하는 이 장면은 기묘하게 고요하다. 바닥에 흩어진 종이는 청군 진영으로 보낼 항복 문서였다. 47일째 포위된 … 더 읽기

일본의 첫번째 왕, 히미코 — 그녀는 정말 귀신과 통했을까?

장막 너머의 여왕 서기 240년. 중국 위(魏)나라 황제가 사신 티준(梯儁)을 동쪽으로 보냈다. 목적지는 야마타이국(邪馬台国). 바다 건너 섬나라의 여왕이 2년 전 조공을 바쳐왔고, 황제는 답례 사신을 파견하기로 했다. 티준은 황제의 칙서와 황금 도장, 동경(銅鏡, 구리거울) 100매와 각종 선물을 싣고 한반도 서북쪽 대방군(帶方郡)을 거쳐 현해탄을 건넜다. 당시 위나라는 남쪽으로 오(吳), 서쪽으로 촉(蜀)과 국운을 건 대치 중이었다. 바다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 번외편 역사의 현장

이 연재에서 다룬 사건들은 57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현장은 지금도 남아있다. 서울의 궁궐부터 강원도 깊은 산속 강가까지 — 직접 걸어볼 수 있다. 이 글은 번외편이다. 역사보다는 현장 이야기다. 인물 — 세조(世祖)와 단종 세조 어진 초본 세조 어진 초본(世祖 御眞 草本). 김은호(金殷鎬) 그림, 1927년. Public Domain. 조선 7대 임금 세조. 수양대군 이유(李瑈). 1417~1468. 단종 어진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11) — 다섯 해

왕이 된다는 것 1452년, 음력 5월. 문종이 죽었다. 단종이 왕좌에 앉은 날, 그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의관이 몸에 맞지 않았다. 왕좌가 그의 몸보다 컸다. 신하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는데, 그 절을 받는 방법을 — 그 무게를, 그 의미를 — 아무도 미리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버지 문종은 병약했고, 단종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기침할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