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과 단종 (6) — 왕의 이름으로
계유정난 직후, 수양대군은 좌의정·이조판서·병조판서의 세 자리를 동시에 쥔다. 어린 단종은 여전히 왕이었지만 모든 결재는 한 사람의 의지를 통과했다. 왕의 이름으로 움직이던 권력 공백의 1453~1455년을 본다.
별과 시간과 사랑 이야기
계유정난 직후, 수양대군은 좌의정·이조판서·병조판서의 세 자리를 동시에 쥔다. 어린 단종은 여전히 왕이었지만 모든 결재는 한 사람의 의지를 통과했다. 왕의 이름으로 움직이던 권력 공백의 1453~1455년을 본다.
1453년 10월 10일 밤, 수양대군이 좌의정 김종서를 친다. 어린 단종의 보호자였던 그가 사라진 한 밤이 어떻게 조선의 왕권을 뒤집었는지 — 계유정난(癸酉靖難)의 한양 도성 안에서 벌어진 9시간을 추적한다.
1453년 음력 10월 9일 밤, 한양은 고요했다. 다음 날 새벽 수양대군이 좌의정 김종서를 친다. 계유정난 전야의 한양 도성 — 권력자 김종서, 수양대군의 집, 어린 단종이 있던 경복궁의 마지막 평온을 한 시간씩 따라간다.
수양대군은 처음부터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형의 아들에게서 왕좌를 빼앗기로 결심하기까지의 논리, 그리고 그 결단을 굳혀준 한 남자 한명회의 등장. 1452~1453년, 계유정난을 향해 가는 길의 첫 굽이를 따라간다.
황표(黃標)는 어린 왕 대신 신료들이 인사 결정을 미리 올리던 결재 방식이다. 1452년 단종 즉위 직후 김종서가 도입한 이 제도가 어떻게 왕권을 무력화하고 계유정난의 배경이 되었는지를 사정전의 일상에서 추적한다.
1452년 음력 5월 14일 밤, 경복궁 강녕전의 문이 닫혔다. 소문은 문보다 빠르다. 열두 살 소년이 왕이 되던 날, 서른여섯의 숙부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마토는 철과 화약만으로 만들어진 전함이 아니었다. 시대의 변화를 읽은 사람, 괴물을 설계한 사람, 마지막 명령을 떠안은 사람, 배와 함께 가라앉은 사람, 그리고 그 침몰을 언어로 남긴 사람이 모두 그 이름 안에 들어 있었다.
1945년 4월 7일, 미 해군은 왜 야마토의 한쪽 측면만 집요하게 노렸을까. 그 답 속에는 제국 해군의 마지막 오판과, 침몰 뒤 더 커진 이름의 역사가 함께 들어 있다.
1945년 4월, 오키나와 상륙이 시작되자 일본 해군은 더 이상 승리를 계산하지 않았다. 야마토에게 내려진 것은 전술이 아니라, 제국의 체면을 위한 죽음의 명령이었다.
야마토가 공식 취역한 1941년 12월, 바다는 이미 전함이 아니라 항공기와 항공모함이 규칙을 다시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왜 이 거대한 배를 끝내 버리지 못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