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7월 17일 새벽, 열한 명의 일행은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사형선고
몇 분 뒤, 문이 열렸다. 유로프스키가 무장한 처형대원 열한 명을 이끌고 들어왔다.
유로프스키는 손에 든 종이를 펼쳤다.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니콜라이가 가족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유로프스키를 보며 되물었다.
뭐라고?
유로프스키의 권총이 니콜라이의 가슴을 향해 불을 뿜었다. 황제는 즉사했다. 그것이 300년 왕조의 마지막 말이었다.

20분의 살육
이를 신호로 밀실에서 무차별 난사가 시작되었다. 수십 발의 총성이 좁은 벽에 부딪히며 굉음을 냈고, 회반죽 가루와 화약 연기가 뒤엉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피와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보트킨이 먼저 쓰러졌다. 트루프와 하리토노프가 뒤를 따랐다. 알렉산드라는 성호를 그으려던 손을 들어올린 채 머리에 총을 맞고 절명했다.
그런데 총성이 멈추고 매연이 걷히자 — 바닥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네 명의 황녀들과 알렉세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살아 있었다.
총알이 통하지 않자 처형대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만취한 예르마코프를 필두로 소총 총검을 꺼내 들었다. 바닥에 웅크린 아이들을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하녀 데미도바는 귀중품을 숨긴 깃털 베개를 방패 삼아 총검을 막아냈으나, 끝내 수십 차례 찔려 절명했다.
알렉세이의 눈이 아직 떠 있었다.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미약하게 손을 움직였다. 유로프스키가 직접 권총을 들어 소년의 머리에 확인 사살을 가했다.
이 처참하고 미숙한 살육은 20분에서 30분 동안 계속되었다. 바닥은 피바다가 되었고, 열한 명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나스타샤가 품에 안고 내려왔던 반려견 지미는 주인의 시신 옆에서 개머리판에 맞아 죽었다. 알렉세이의 반려견 조이만이 밖으로 도망쳐 살아남았다.

증거를 지우다
새벽 3시, 열한 구의 시신이 모포에 싸여 트럭 화물칸에 짐짝처럼 실렸다. 트럭은 진흙탕 길을 뚫고 예카테린부르크 외곽 15킬로미터의 콥탸키 숲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네 형제”라 불리던 폐광산, 가니나 야마였다.
시신의 옷을 벗기자 황녀들의 속옷에서 다이아몬드와 진주가 쏟아져 나왔다. 만취한 예르마코프의 수하들이 보석을 훔치려 달려들었다. 유로프스키가 권총을 빼 들었다. “약탈하는 자는 즉시 사살한다.” 간신히 통제를 되찾았다.
시신들은 깊이 2미터의 광산 수직갱도에 던져졌다. 흔적을 없애기 위해 수류탄까지 터뜨렸으나, 갱도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이틀 뒤, 유로프스키는 이 장소가 너무 쉽게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시신을 다시 꺼내 더 깊은 숲으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트럭이 늪지대에서 빠져 움직이지 못했다. 포로센코프 로그 — 돼지의 협곡이라 불리는 이 이름 없는 수렁에서, 유로프스키는 급하게 결정을 내렸다.
얕은 구덩이를 파고 아홉 구를 묻었다. 나머지 두 구 — 알렉세이와 마리아 — 는 70미터 떨어진 별도의 구덩이에 분리 매장했다. 누군가 무덤을 발견하더라도 열한 명의 수를 맞추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시신들의 얼굴은 개머리판으로 짓이겨졌다. 황산과 휘발유를 부어 불태웠다. 그 위로 철도 침목을 덮어 평범한 진흙 길로 위장했다.
유로프스키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61년 동안, 그 판단은 맞았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
처형 직후 볼셰비키는 공식 발표를 내놓았다. “니콜라이 2세만을 처형했으며, 황후와 자녀들은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켰다.” 거짓이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이 수십 년에 걸친 미스터리의 씨앗이 되었다.
백군의 수사관 니콜라이 소콜로프가 이파티예프 저택과 가니나 야마 일대를 뒤졌다. 탄흔, 혈흔, 보석 파편, 보트킨의 틀니, 아나스타샤의 반려견 지미의 사체까지 발견했다. 그러나 온전한 시신은 찾지 못했다. 포로센코프 로그의 진흙 길 바로 아래에 시신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채, 소콜로프는 시신이 완전히 소각되었다는 불완전한 결론을 내렸다.
시신이 없으니 죽음을 확정할 수 없었다. 이 빈틈 위에 전설이 자라났다.

아나스타샤
생존설의 중심에 선 이름은 막내 황녀 아나스타샤였다. 활발하고 장난기 많았던 열일곱 살 소녀 — 러시아 대중의 상상력이 가장 쉽게 붙잡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1920년, 베를린의 한 운하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다 구조된 여성이 있었다. 기억상실을 주장하며 침묵하던 그녀는, 점차 자신이 처형 현장에서 부상당한 채 한 병사에 의해 구출된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훗날 안나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수십 년간 세계를 양분하는 논쟁의 중심이 된다.
앤더슨은 황실 내부의 은밀한 사정과 궁정 의례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귀 형태와 발가락의 외형적 특징까지 실제 아나스타샤와 유사했다. 망명 러시아 귀족들 중 일부는 그녀를 진짜 아나스타샤로 인정했고, 일부는 격렬히 부인했다. 법정 소송이 30년 넘게 이어졌다. 할리우드는 영화를 만들었다. 진실은 확인되지 않은 채 신화만 커져갔다.
사람들이 앤더슨을 믿었던 이유는 증거가 충분해서가 아니다. 열일곱 살 소녀가 그 지하실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61년 뒤
1979년, 지질학자 알렉산드르 아브도닌은 처형 총지휘자 유로프스키의 아들에게서 아버지의 비망록을 입수했다. 비망록에는 포로센코프 로그의 위치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아브도닌은 그 늪지대를 파헤쳐 두개골을 확인했다. 그러나 소련 시대였다. KGB의 보복이 두려웠다. 그는 진실을 다시 묻었다.
10년 뒤 소련이 무너졌다. 1991년, 보리스 옐친 정부 주도로 공식 발굴이 이루어졌다. 포로센코프 로그의 얕은 구덩이에서 참혹하게 훼손된 아홉 구의 유골이 수습되었다.
미국, 영국, 러시아 합동 연구진이 DNA 감식에 착수했다. 대조군은 알렉산드라 황후의 모계 혈연인 영국의 필립 공이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 유골 중 다섯 구가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그리고 세 명의 딸이었다.
그리고 안나 앤더슨. 병원에 보관되어 있던 그녀의 조직 샘플로 DNA를 추출했다. 로마노프 가문과의 유전적 연관성은 없었다. 그녀의 본명은 프란치스카 샨츠코프스카 — 폴란드 출신의 공장 노동자였다. 수십 년의 미스터리가 한 줄의 염기서열 앞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두 사람
그러나 아홉 구만으로는 끝이 아니었다. 알렉세이와 마리아의 유골이 빠져 있었다. 유로프스키가 70미터 떨어진 곳에 따로 묻었다고 비망록에 적어놓은 그 두 사람.
2007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팀이 포로센코프 로그 본 무덤에서 70미터 떨어진 지점을 탐색했다. 불에 타고 부서진 두 사람분의 뼛조각이 나왔다.
법의학자 마이클 코블의 정밀 분석 결과 — 이 유골이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의 친자식일 확률은 아들의 경우 80조 배, 딸의 경우 4조 3,600억 배. 무관한 타인일 가능성은 사실상 0이었다.
90년에 걸친 미스터리가 종결되었다. 아나스타샤는 살아남지 못했다. 알렉세이도, 올가도, 타티아나도, 마리아도. 아무도.
피의 성당
볼셰비키는 흔적을 지우려 했다. 시신을 태우고 묻고 위장했다. 1977년, 당시 스베르들로프스크 공산당 서기이던 보리스 옐친은 정치국의 지시로 이파티예프 저택을 한밤중에 굴착기로 철거했다. 성지화를 두려워한 것이었다.
그러나 콘크리트 잔해로 건물을 지웠어도,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
소련이 무너진 뒤, 바로 그 터 위에 거대한 정교회 성당이 세워졌다. 피의 성당(Church on the Blood). 그리고 니콜라이 2세 일가 전체가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유약하고 결단력 없었던 황제, 이방인으로 살다 간 황후, 병약한 소년과 꽃다운 네 딸. 권력자들의 냉혹한 계산 앞에서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희생된 이들은, 역설적으로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로마노프 가문의 마지막 밤은 그중 하나다.

출처
본문 출처
야코프 유로프스키, 비망록 (Yurovsky’s Note, 1920년)
로버트 K. 매시, 『로마노프: 황조의 최후』 (Robert K. Massie, The Romanovs: The Final Chapter, 1995)
올랜도 파이지스, 『인민의 비극: 러시아 혁명사 1891–1924』 (Orlando Figes, A People’s Tragedy, 1996)
헬렌 라파포트, 『로마노프 자매들』 (Helen Rappaport, The Romanov Sisters, 2014)
니콜라이 소콜로프, 『황실 가족의 살해』 (Nikolai Sokolov, The Murder of the Tsar’s Family, 1924)
마이클 코블 외, 「The identification of the Romanovs: Can we (finally) put the controversies to rest?」, Investigative Genetics, 2009
이미지 출처
생성형 이미지: 본문에 사용한 생성형 이미지는 Google Gemini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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