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과 단종 (10) — 미결(未決)

이후의 세상 1457년 음력 10월, 단종이 죽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갔다. 조회가 열렸다. 어새가 찍혔다. 전국에서 세금이 걷혔다. 군사가 움직였다. 한명회가 조정을 움직였다. 세조가 결정을 내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아무 일도 없었다고 기록되었다. 그 기록이 역사가 되었다. 이후의 세상 조회는 계속 열렸다. 왕통의 문제 그러나 기록이 침묵해도 사람들의 기억은 침묵하지 않았다. 사육신의 이름이 입에서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9) — 열일곱의 밤

관풍헌(觀風軒) 1457년 여름, 청령포에 홍수가 났다. 삼면을 감싸던 강물이 안으로 들어왔다. 단종이 머물던 공간까지 물이 찼고, 더 이상 청령포에 있을 수 없었다. 영월 읍내의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겨갔다. 더 넓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다. 영월 백성들이 종종 지나가는 곳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지붕 너머를 바라보았다고 전해진다. 노산군이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풍헌 금성대군(錦城大君) 세조에게는 동생이 있었다.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8) — 반역

살아있는 이름 1455년 선위 이후, 단종은 상왕으로 궁 안에 남았다. 겉으로는 잠잠한 시간이었다. 어새는 세조에게 넘어갔고 조정의 명령도 이제 그의 손에서 나왔다. 궁 안의 예법도, 사람들의 동선도, 보고가 오가는 순서도 이미 새 임금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도 지워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단종이라는 이름이었다. 왕위를 내놓았다고 해서 정통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세종의 손자를 임금으로 모셨던 신하들,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7) — 선위

1455년, 여름 계유정난 이후 만 2년이 지났다. 수양대군은 이름만 없는 왕이었다. 모든 결정이 그를 거쳤다. 모든 임명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군사가 그를 따랐다. 나라가 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어새는 여전히 단종에게 있었다. 그 어새가 마지막 문제였다. 사정전의 어새는 단종의 손에 있었다. 단종이 찍었다. 찍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새를 든 손은 단종의 것이었다. — 언젠가는. 단종이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6) — 왕의 이름으로

나라는 계속 돌아갔다 그것이 이상했다. 하룻밤 사이에 나라의 상층이 바뀌었는데, 아침이 왔다. 조회가 열렸다. 문서가 오갔다. 어새가 찍혔다. 단종은 여전히 왕이었다. 이름으로는. 사정전의 자리들이 달라졌다. 황보인이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다. 김종서가 앉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다. 단종은 그들을 보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물음은 어새보다 위험했다. 정난 이후의 사정전 그 뒤의 사정전. 왕의 이름으로 교지(敎旨)가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5) — 계유정난

10월 10일 밤이 바뀌었다. 수양이 움직였다. 한명회가 설계했다. 홍윤성(洪允成)과 양정(楊汀) 등이 뒤를 따랐다. 병사들이 따랐다. 그날 밤 수양과 함께한 자들은 훗날 정난공신(靖難功臣)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첫 번째 목적지는 김종서의 집이었다. 10월 10일 수양이 움직였다. 진입 수양은 서두르지 않았다. 유시(酉時)였다. 해가 막 떨어진 시각. 서울은 아직 저녁이었다. 사람들이 거리에 있었다. 골목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아무것도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4) — 전야

10월 9일 밤 서울은 고요했다. 달이 떠 있었다. 골목에 개가 짖었다. 대궐에서는 근위가 교대했다. 도성 안 어딘가에서 아이가 울다 그쳤다. 누구도 이 밤이 다른 밤이라는 것을 몰랐다. 수양대군의 집에는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도성에서 불을 밝힌 집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집들과는 이유가 달랐다. 불이 꺼지지 않는 밤 혼자 깨어 있었다. 한명회 한명회가 서울을 걷고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3) — 잠룡의 논리

잠룡(潛龍)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첫 번째 효사(爻辭)는 이렇게 말한다. 잠룡물용(潛龍勿用). 물속에 잠긴 용은 아직 쓰이지 않는다. 그것은 경고가 아니었다. 시간의 문제였다. 종친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법도가 그랬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 세종이 만든 나라의 법도였다. 세종은 왕실 혈족이 권력에 가까이 가면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수양도 알았다. 그러나 아는 것과 따르는 것은 달랐다. 그의 하루는 바깥에서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2) — 황표

사정전(思政殿), 1452년 여름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에는 매일 아침 문서가 쌓였다. 사정전은 근정전 바로 뒤에 있는 편전(便殿)이었다. 즉위식과 사신 접견이 열리는 근정전과 달리, 사정전은 왕이 매일 신하들을 만나고 국정 문서를 처리하는 일상의 공간이었다. 어새(御璽)가 찍히는 곳. 결정이 만들어지는 곳. 열두 살이 그 자리에 앉았다. 승지들이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보고했다. 어린 임금은 들었다. 질문도 했다. 때로 문서를 직접 … 더 읽기

수양대군과 단종 (1) — 닫힌 문

경복궁, 1452년 5월 14일 밤 약 냄새가 강녕전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관 하나가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뛰지 않았다. 궁에서 뛰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걸음의 속도가 달랐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발소리가 평소보다 빨랐다. 또 다른 내관이 그 걸음을 보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강녕전 안에서는 의관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약재 냄새. 낮은 목소리. 아무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