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세사
혼노지의 변 · 6편

어쩔 수 없구나
— 혼노지의 변

(6) 그날의 자리들 (번외)

어쩔 수 없구나 — 혼노지의 변 (6) 그날의 자리들 (번외)

사건이 지나간 자리

1582년 6월의 며칠은 지도 위에 선명한 좌표들을 남겼다. 어떤 곳은 불에 사라졌고, 어떤 곳은 다른 이름으로 다시 세워졌으며, 어떤 곳은 아무것도 아닌 잡목림과 민가 사이에 조용히 남아 있다. 혼노지의 변 본편의 격렬함은 이제 끝이다. 남은 것은 차분한 순례다. 돌과 풀과 비석만 남은 자리들을 따라가 보자.


아즈치 성 터 — 신이 되려 한 사람의 자리

시가현 오미하치만시, 비와 호수 북쪽. 아즈치산의 해발 199미터 위에 오다 노부나가가 1576년부터 1582년까지 축조한 성이 있었다. 5층의 천수각과 이를 둘러싼 대규모 석축, 그리고 화려한 전각들은 당대 일본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이었다. 노부나가는 이곳에서 신이라는 글자를 새겨 권력의 신격화를 꾀했다.

혼노지의 변 직후 아즈치 성은 소실되었다. 정확한 방화 경위는 사료마다 달랐다. 아케치 군이 퇴각하며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설, 노부나가의 부장들이 성을 버리며 자결을 위해 불을 지른 설, 약탈하던 자들의 횃불이 우연히 화재가 된 설이 있다.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히데요시 시대에도 아즈치 성은 재건되지 않았다. 지금은 거대한 석축과 기단만 남아 있다. 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비와 호수와 교토 방향의 산맥이 거의 그대로 보인다. 사라진 것은 성과 거기에 깃든 욕망뿐이다.

사라지기 전의 아즈치 성
해 질 무렵의 아즈치 성 천수각과 대규모 석축.
아즈치 성의 웅장했던 모습을 담은 장면.
아즈치 성 천수대 터
일본 시가현 아즈치성 천수대 터. 낮은 석축과 돌계단 뒤로 나무가 우거진 산 능선이 보인다.
천수각은 사라지고, 천수대의 석축만이 노부나가의 성이 서 있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Akonnchiroll / CC BY-SA 4.0

혼노지 터 — 원래의 자리

교토시 나카교구 아부라노코지(油小路), 1582년 6월 2일에 불이 난 자리다. 지금은 아파트와 상점이 있는 평범한 도시 블록이다. 한쪽 모퉁이에 손바닥만한 검은 돌비석이 하나 있다. “혼노지 터(本能寺跡)”라고 새겨져 있다.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밤의 현장이지만 이곳은 관광 명소가 아니다. 관광객이 몰려오는 기념관도 없고, 유명한 레스토랑도 없다. 권력의 자리는 불타 사라진 후 도시의 배경으로 녹아 있다.

혼노지는 1591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히데요시의 명령이었다. 원래 자리와 현재 자리 사이는 약 1킬로미터였다. 살인 현장은 도시 계획 속으로 용해되었다.

혼노지의 불길
16세기 일본 사찰 내부가 불길과 연기로 뒤덮인 모습.
1582년 혼노지의 밤을 담은 장면.
원래 혼노지 터를 표시하는 비석
교토의 옛 혼노지 터를 표시하는 화강암 기념비. 현대 건물과 관목 사이에 세워진 비석이 1582년 화재가 일어난 장소를 가리킨다.
거대한 사건의 현장은 오늘날 작은 비석 하나로 남아 있다.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사찰 기록에 따르면 혼노지는 본래 15세기에 세워진 사찰이었고, 노부나가는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사찰 자체의 역사는 그 사건보다 훨씬 오래되었지만, 역사의 기억 속에서는 1582년 6월 2일 하루로 압축되었다.


현재의 혼노지 — 이전된 사찰

교토시 나카교구 테라마치 거리. 현재의 혼노지 본당은 1928년에 재건된 건물이다.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내에는 노부나가 공 묘(信長公廟)라는 이름의 공양탑이 있다.

이것은 실제 무덤이 아니다. 노부나가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혼노지의 불길 속에서 완전히 소각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이곳은 위령하는 탑일 뿐이다. 노부타다와 측근들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다.

매년 6월 2일이 되면 노부나가를 기리는 노부나가공키(信長公忌)가 거행된다. 수천 명을 죽이고 사찰을 불태운 남자를 불교 사찰이 위령해 왔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종교와 권력, 역사와 망각 사이의 묘한 거리가 그 의례 안에 함께 남아 있다.

현재 테라마치의 혼노지 사찰
교토 테라마치 거리에 있는 현재 혼노지 본당의 외관. 전통적인 일본식 지붕과 목조 구조의 사찰 건물이 보인다.
현재 테라마치에 자리한 혼노지 본당. ⓒ そらみみ / CC BY-SA 3.0

니조고쇼 터 — 또 하나의 불길

교토시 가미교구. 이곳은 오다 노부타다가 죽은 자리였다. 노부나가의 장자였던 노부타다는 25세였다. 혼노지의 불길 속에서 아버지와 같은 아침에 죽음을 맞이했다.

현재 이 지역은 일반 주거·상업 지역이다. 역사적 흔적은 거의 없다. 근처의 구 니조성 터가 있지만, 그것은 노부타다가 죽은 “니조고쇼”와는 다른 건물이다. 정확한 위치 특정조차 어렵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도시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불타는 니조고쇼
새벽빛과 불길에 휩싸인 니조고쇼를 멀리서 바라본 모습.
노부타다가 농성했던 니조고쇼의 화재 장면.
니조 일대에 남은 옛 저택터 비석
교토의 니조 일대 옛 저택터를 알리는 일본어 석비. 좁은 골목과 현대식 건물 사이에 세워진 비석이 보인다.
노부타다가 농성했던 니조고쇼 자체는 사라졌고, 오늘날 니조 일대에는 다른 옛 니조 저택터를 알리는 비석이 남아 있다. ⓒ そらみみ / CC BY-SA 3.0

역사 속에 남은 것은 그의 죽음이라는 사실뿐이다. 25세에 죽은 어린 무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만약 그가 살아남았다면 일본의 다음 두 세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것은 실현되지 않은 역사의 빈틈이다.


야마자키 전투지 — 13일의 끝

교토부 오야마자키초, 교토와 오사카 사이의 덴노잔(天王山)이다. 해발 271미터의 작은 언덕이다. 1582년 6월 13일, 아케치 미쓰히데와 하시바 히데요시는 이 언덕을 놓고 싸웠다.

덴노잔을 잡은 쪽이 전투를 이겼다. 이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곳을 차지하면 심리적 우위와 전술적 선제권을 얻는다. 나중에 일본인들은 이 전투를 기억하며 “덴노잔을 잡다”라는 관용어를 만들었다. 지금도 이 말은 “결정적 승리를 거두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현재 덴노잔은 산 중턱에 작은 설명판 하나 놓인,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한적한 하이킹 코스다. 조용한 농촌 풍경 안에 역사가 자연처럼 묻혀 있다.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이곳의 과거를 생각할까?

야마자키 전투의 아침
비가 갠 야마자키 전투 현장에 흩어진 무기와 깃발.
1582년 야마자키 전투의 아침.
지금의 덴노산 등산로
교토부 오야마자키의 덴노산 등산로. 나무가 우거진 산길과 계단이 비탈을 따라 이어진다.
한때 천하의 방향을 가른 야마자키 일대는 지금 조용한 산길과 숲으로 남아 있다. ⓒ Maechan0360 / CC BY-SA 3.0

오구루스 — 대나무 숲의 끝

교토시 후시미구 오구루스쵸(小栗栖町)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최후 장소로 전해지는 곳이다. 지금은 교토 외곽의 평범한 주거 지역이며, 대나무 숲이 있던 자리 근처에는 그의 시신이 묻혔다고 전해지는 도총(胴塚)이 남아 있다. 반면 ‘미쓰히데 수총’으로 알려진 비석은 이곳이 아니라 교토 히가시야마의 우메미야초에 있다.

전승에 따르면 미쓰히데는 이곳의 대나무 숲에서 농민이 휘두른 죽창에 찔려 중상을 입었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가신에게 목을 베게 했다. 실제 경위와 매장 위치는 확정할 수 없다. 다만 오구루스의 도총과 히가시야마의 수총은 서로 다른 장소이며, 후대의 기억이 두 장소를 하나의 전설처럼 이어 놓은 것이다.

비석 주변의 좁은 골목은 지금도 조용하다. 가끔 주민들이 꽃을 놓고 간다. 불과 열하루 남짓 천하의 주인이었던 남자의 최후 자리가 이곳이다. 이름 모르는 동네 뒷골목,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비석이다. 다도와 와카에 능했고 성을 축조했으며 조총까지 다뤘던 당대 최고의 교양인 한 사람의 끝이 이곳에 있다. 후대 전승에 따르면 도시미쓰의 시신은 미쓰히데와 함께 효수된 뒤, 화가 가이호 유쇼가 밤에 훔쳐 신뇨도에 묻었다고 한다. 그의 딸 오후쿠는 훗날 가스가노 쓰보네가 되어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유모가 된다.

오구루스의 마지막 밤
비 내리는 대나무 숲길과 어둠 속의 무장한 인물.
오구루스의 대나무 숲과 미쓰히데의 최후를 담은 장면.
오구루스의 달 — 미쓰히데의 마지막을 그린 판화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19세기 목판화. 달빛 아래 오구루스의 숲을 배경으로 무장한 아케치 미쓰히데가 말 위에 있는 장면.
오구루스의 마지막을 직접 보여주는 사진은 아니지만, 쓰키오카 요시토시가 그린 미쓰히데 최후의 후대 기억이다.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빗추 다카마쓰성 터 — 수공의 현장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혼노지의 변이 벌어질 때 하시바 히데요시(후일의 도요토미)는 이곳에 있었다. 빗추(備中) 지역의 다카마쓰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특이한 전술을 선택했다. 수공(水攻め)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흐르는 강의 물길을 막아서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성 전체가 물에 잠기도록 한 것이었다. 이것은 순수한 전투가 아니라 거대한 토목 공사였다. 일본 전쟁사에서도 유례가 드물 정도로 규모가 컸다.

성은 남아 있지 않지만,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석축과 유구 일부가 보존되어 있다. 근처 역사자료관에는 수공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자리에서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는 군대를 돌려 동쪽으로 향했고, 그 이동은 훗날 ‘중국 대반환’이라는 전설이 되었다. 한 남자가 다음 수레바퀴의 중심축이 되기 위해 군대 전체를 움직인 순간이었다.

빗추 다카마쓰성 터
빗추 다카마쓰성 터
ⓒ by Reggaeman / CC BY-SA 3.0

오사카성 — 재 위에 세운 성

오사카시 주오구. 이곳은 혼노지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시리즈의 종점으로 어울린다.

히데요시는 천하인이 된 후 1583년 오사카성 축조를 시작했다. 아즈치 성오사카성이라는 계승의 선언이었다. 노부나가의 권력이 자신에게 옮겨왔음을 건축물로 증명하려 한 것이었다. 오사카성은 아즈치성보다 훨씬 크게 지어졌다.

현재 천수각은 1931년에 콘크리트로 재건된 건물이다. 눈에 보이는 석축과 해자는 도쿠가와 시대에 다시 쌓은 것이다. 도요토미 시대의 오사카성은 도쿠가와의 재건 과정에서 약 7미터의 흙 아래 묻혔고, 1959년과 1984년 조사에서 그 석축이 확인되었다. 2025년 문을 연 도요토미 석원관에서는 그 지하 석축을 직접 볼 수 있다. 지금 오사카성은 한 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권력이 포개 놓은 지층이다.

오사카성은 도쿠가와 시대로 접어들며 도쿠가와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1615년 오사카 여름의 진(大坂夏の陣)에서 다시 불탔다. 이번에는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와 그의 모친이 성 안에서 죽었다. 수레바퀴는 계속 돌아갔다.

현재의 오사카성
거대한 석축과 해자 위에 세워진 현재의 오사카성 천수각. 흰 벽과 짙은 녹색 지붕, 금빛 장식이 나무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보인다.
현재의 오사카성 천수각. ⓒ 663highland / CC BY-SA 2.5

마지막 생각

1582년 6월은 하나의 고정점이 아니라, 사건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자리다 — 권력의 자리는 비어 있지 않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채우며, 그것도 언젠가는 다시 불탄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사건이 같은 이야기로 전해지는 이유는 한 번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일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권력과 공포는 지금도 조용한 계약을 맺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자신의 혼노지를 짓고 있다.

돌과 풀과 비석만 남은 자리들을 돌아보며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남은 것은 몇 개의 좌표와 이름 없는 숲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마디뿐이다.

어쩔 수 없구나.

사료 노트

  • 노부나가공키: 현재 혼노지의 연례 추모 의례 명칭은 信長公忌다. 『신장공기』(信長公記)와는 다른 이름이다.
  • 오구루스와 도시미쓰의 시신: 오구루스의 도총과 히가시야마의 미쓰히데 수총은 서로 다른 장소다. 도시미쓰의 시신을 화가 가이호 유쇼가 훔쳐 신뇨도에 묻었다는 내용은 후대 전승이다.
  • 오사카성 지하 석축: 현재 지상에 보이는 석축은 도쿠가와 재건기의 것이며, 도요토미 시대 석축은 지하 약 7미터에서 확인되었다. 2025년 개관한 도요토미 석원관에서 공개하고 있다.
출처

이미지 출처

본문에 사용한 실사 이미지는 각 이미지 캡션에 출처와 라이선스를 표시했다.

생성형 이미지는 Midjourney로 제작했다.

본문 출처

大阪城天守閣 「豊臣石垣館」 및 「豊臣石垣コラム」 — 도요토미·도쿠가와 오사카성의 지층과 지하 석축.

혼노지 공식 안내 — 信長公忌 및 현재 혼노지 관련 안내.

오구루스·미쓰히데 수총 관련 교토 현지 안내 자료.

Series

어쩔 수 없구나 — 혼노지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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