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나가의 가신단에 아케치 미쓰히데라는 사람이 있었다.
1582년 6월 1일 밤, 그는 1만 3천의 군대를 단바(현 교토부 중부 산악지대)에서 움직였다. 표면상 명분은 서쪽 빗추에서 모리와 싸우는 히데요시를 돕는 출정이었다. 그런데 행군 도중 어느 갈림길에서, 그는 말머리를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틀었다. 동쪽 끝에는 교토가 있었고, 그 안에 혼노지라는 절이 있었으며, 그 절에서는 그의 주군이 자고 있었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미쓰히데의 출신은 분명하지 않다. 미노국(美濃国)의 어느 호족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정도가 통설이다. 노부나가 진영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는 불분명하다. 1568년경, 그는 마지막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측근으로 노부나가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마흔에 가까웠다.
다른 가신들과 달리 그는 “신참”이었고, 그 신참이라는 사실은 그의 인생 끝까지 따라다녔다. 노부나가 휘하의 핵심 가신단 — 시바타·마에다·니와·하시바 — 이 모두 오와리 시절부터 동고동락한 사람들이라면, 미쓰히데는 마흔이 되어 합류해 빠르게 위로 올라간 외부인이었다. 능력은 출중했으나 인연이 약했다.

그는 다도·와카·유학·서예에 모두 깊었고, 축성과 행정에도 능했다. 단바 정벌(1575~1579)이 그의 결정적 무대였다. 그는 정면 충돌을 피하고 협상과 심리전을 섞어 4년에 걸쳐 단바 일대를 평정했다. 노부나가는 그 공으로 단바 일부와 오미 일부를 영지로 내렸고, 미쓰히데는 사카모토 성과 가메야마 성을 직접 짓고 다스렸다. 가신단 안에서 그의 평판은 좋았다. 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고, 약속을 지켰고, 냉정했다.

어머니가 죽다
단바 정벌의 마지막 단계가 하타노(波多野) 일족이었다. 1579년, 그들의 본거지인 야카미 성은 1년 가까운 포위 끝에 식량이 바닥나고 있었다. 미쓰히데는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자기 어머니를 인질로 보냈다고 전해진다 — 자기가 보증인이 됨으로써 하타노 형제의 안전을 약속한 것이었다.

하타노 형제는 그 약속을 믿고 성을 나와 노부나가 앞에 끌려갔다. 노부나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형제는 처형되었고, 그 소식이 야카미로 돌아갔을 때 하타노의 잔당들은 인질로 와 있던 미쓰히데의 어머니를 보복으로 살해했다.

이 일화의 정확한 사실 관계는 사료마다 갈린다. 어머니의 인질행 자체부터 후대의 윤색이라는 의견이 있고, 어머니의 죽음을 직접 기록한 동시대 1차 사료는 없다. 다만 미쓰히데와 노부나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이 장면이 가장 자주 인용되어 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쿠마 노부모리를 내쫓다
사쿠마의 일은 어머니 사건 1년 후인 1580년이었다. 노부나가의 30년 봉직 가신 사쿠마 노부모리가 19개조의 추방장 한 장으로 잘려 나갔다. 명목은 이시야마 혼간지 공략의 부진. 추방장이 적은 죄목들 — “성과 부진”, “사익 추구”, “부하 관리 실패” — 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 사건이 가신단에 주는 신호는 단순했다. 노부나가는 30년의 공도 종이 한 장으로 끝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신호가 미쓰히데에게는 다른 어떤 가신보다 더 무겁게 들렸을 것이다. 사쿠마는 노부나가의 부친 시절부터 봉직한 오와리 시절의 사람이었다. 미쓰히데는 마흔이 되어 합류한 신참이었다. 사쿠마조차 잘렸다면, 신참이 어디에 발 디딜 자리가 있는가.
미쓰히데가 단바를 받은 것도, 사카모토 성을 짓고 산 것도, 결국 노부나가의 변덕 위에 얹힌 것이었다. 옆자리의 30년 가신이 종이 한 장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자기 자리도 바람 위에 촛불과 같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생선으로 모욕 당하다
1582년 5월,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아즈치 성으로 초대해 큰 연회를 열었다. 다케다 가문 멸망(3월) 후 이에야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런 자리를 총괄할 만한 사람은 가신단에 미쓰히데뿐이었다. 손님 체면도, 주인의 비위도, 세세한 준비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신은 그뿐이었다.
그런데 연회 도중 노부나가가 생선 요리에서 악취가 난다고 불평했다. 사람들 앞에서 미쓰히데를 질책했고, 곧 그 책임에서도 물러나게 했다는 것이 후대 사료가 전하는 줄거리다. 진짜 생선이 상했는지, 아니면 그냥 트집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날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는지는 분명하다. 가신단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 사소한 이유로 많은 사람 앞에서 주군에게 망신 당하는 장면이었다.

미쓰히데가 받은 것은 신체 폭력이 아니었다. 사무라이 사회에서 면목(面目)은 신체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주군에게 한 번 깎인 면목은, 그 자리에 있던 동료 가신들의 시선이라는 두 번째 칼에 다시 한 번 깎였다. 이 사건이 끝난 자리에서 가신들이 미쓰히데를 보는 시선은 어제와 같지 않았다.
영지를 뺏기다
생선 사건이 끝나기 전후, 노부나가에게서 또 하나의 명령이 내려왔다. 미쓰히데가 그동안 다스려온 단바와 오미 일부를 거두고, 대신 아직 모리 세력의 손에 있는 이즈모(出雲)와 이와미(石見) 두 지방을 새 영지로 삼으라는 처분이었다.

표면상 그것은 더 큰 영토를 주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의 조건은 명확했다. 새 영지는 이미 정복된 땅이 아니라 미쓰히데가 자기 군대로 다시 빼앗아야 하는 땅이었다. 빼앗긴 땅은 손에 쥔 실질이고, 새로 받은 땅은 빈 그릇이었다. (몇년 후 이에야스도 히데요시로부터 비슷한 명령을 받는다. 다만 이쪽은 전화위복이 됐다)
이 명령의 무게는 사쿠마 추방장과 결이 같았다. 한쪽은 종이 한 장으로 30년 가신을 잘랐고, 다른 한쪽은 한쪽 손에 있는 영지를 거두면서 다른 한쪽 손에 정복하지 못한 땅을 얹어주었다. 둘 다 노부나가가 가신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주는 같은 패턴의 다른 형태였다.
이 명령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후대 윤색인지에 대해서는 사료의 다툼이 있다. 단바 영지 몰수의 정확한 시점·범위, 이즈모·이와미 재배치의 강제성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평가가 다르다. 다만 1582년 봄에 미쓰히데가 자기 자리가 좁혀지고 있다는 신호를 한 번 더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주사위를 던지다
1582년 봄까지 미쓰히데가 겪은 일을 헤아려보면 이런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사쿠마의 추방, 이에야스 연회의 모욕, 영지 몰수와 무모한 정복 명령. 이 네 가지가 4년에 걸쳐 쌓였다. 그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든 그 무게에서 도망갈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가 가진 선택지는 사실 많지 않았다. 첫째, 이즈모·이와미 정복 명령에 따르는 것 — 모리의 본거지를 자기 군대만으로 빼앗으러 가는 일이었고, 성공 가능성은 낮았으며 실패하면 영지 없는 다이묘로 사쿠마의 길을 다시 걷게 될 가능성이 컸다. 둘째, 명령을 거부하는 것 — 즉시 처분의 명목을 노부나가에게 주는 일이었다. 셋째, 도망치는 것 — 마찬가지로 가족 전체에 처형의 명분을 안기는 일이었다. 넷째 노부나가를 먼저 치는 것 – 가장 위험하지만, 동시에 위 세 길이 다 막혀 있을 때 마지막에 남는 길이었다.
그가 어떤 셈을 했고, 어떤 단계에서 마지막 결심에 이르렀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는 그날의 일기를 적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6월 1일 군대의 행로가 증명한다. 그는 결국 네 번째 길을 골랐다.

사료 노트
- 하타노 어머니 인질 일화: 1579년 야카미 성 함락 과정에서 미쓰히데가 인질로 보낸 어머니가 보복으로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는 동시대 1차 사료에 분명한 기술이 없고, 후대 군기물·태합기류에서 주로 전해진다. 사실 여부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갈리지만, 미쓰히데의 동기를 해석하는 핵심 일화로 오래 인용되어 왔다.
- 이에야스 접대 연회 일화: 1582년 5월 미쓰히데가 생선 사건으로 질책받았다는 일화도 후대 기록에서 전해지며 세부는 사료마다 다르다. 공개적 모욕의 구조와 그 반복 전승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핵심이다.
- 이즈모·이와미 영지 변경: 단바·오미를 거두고 미정복지인 이즈모·이와미를 새 영지로 내렸다는 이야기 역시 1차 사료에 명확한 근거가 약하고 후대 기록에서 주로 전해진다. 시점과 강제성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해석이 갈린다.
출처
이미지 출처
생성형 이미지: 본문에 사용한 생성형 이미지는 Midjourney로 제작했다.
본문 출처
太田牛一 『信長公記(신장공기)』 — 사쿠마 노부모리 추방장 원문, 단바 정벌 전개, 미쓰히데 관련 행적 기록 참조.
藤田達生 『謎とき本能寺の変』 講談社, 2003 — 혼노지의 변 동기와 배경을 사료 비판적으로 분석한 연구서. 미쓰히데 동기론의 쟁점 정리 참조.
太閤記·川角太閤記 류 군기물 — 하타노 어머니 인질 일화, 이에야스 접대 연회 생선 사건 등 후대 전승의 출처. 본문 내 사료 노트에서 별도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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