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마리 앙투아네트 · 1편

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1) 수레 위의 아침

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1) 수레 위의 아침

잠들지 않은 밤

1793년 10월 16일. 파리.

새벽 4시, 콩시에르주리 감옥의 지하 감방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잠들지 못한 채로. 돌벽은 차갑고, 습기는 눅눅하고, 오늘 그녀가 죽는다는 사실은 이미 어제 법정에서 확정됐다.

당시 그녀는 열네 살이었고,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오던 중이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주로 태어나 프랑스 왕세자비가 되러 가는 길이었다. 머리는 높이 올리고, 드레스는 은빛으로 빛나고, 가는 곳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그게 스물세 해 전 이야기다. 지금 이 감방의 여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몸은 쇠약해졌다. 서른일곱 살인데 훨씬 더 늙어 보였다. 그래도 자세만큼은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이 글은 처형 장면을 중계하지 않는다. 대신 그날 아침, 죽기 전 몇 시간 동안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간다.


편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전날 밤, 사형 선고를 받고 감방으로 돌아온 건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그녀는 간수에게 펜과 종이를 달라고 했다. 편지를 써야 했다.

수신인은 시누이 엘리자베트, 죽은 남편 루이 16세의 여동생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에게, 오늘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씁니다. 나는 방금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범죄자들에게 내려지는 수치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당신의 오빠와 다시 만나게 되는 판결 말입니다.

글씨가 작고 흔들렸다. 그런데 내용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자기 연민이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썼고,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을 용서한다고 썼다. 그리고 편지를 접었다.

이 편지는 엘리자베트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혁명 정부 관료들이 가로채서 서랍에 처박아뒀기 때문이다. 편지가 세상에 공개된 건 1816년이 되어서였다. 왕정이 복고되고 루이 18세가 즉위한 뒤에야 꺼내졌다. 23년 동안 서랍 속에 있던 편지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오전 6시 30분, 철문이 열리고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파리의 공식 사형 집행인 앙리 상송이었다.

그가 한 일은 두 가지다. 먼저 그녀의 손을 등 뒤로 돌려 묶었다. 그다음 가위를 들어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단두대 칼날이 목에 제대로 닿으려면 뒷목이 드러나 있어야 한다. 절차상의 이유다.

한때 유럽 귀족 사회의 유행을 이끌었던 그 금발은 이미 거의 다 하얗게 변해 있었다. 잘린 머리카락이 돌바닥 위로 떨어졌다.

상송은 나중에 회고록에 이 순간을 딱 한 줄 남겼다. “그녀는 입술을 다문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그게 전부다.

여담인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일부는 나중에 누군가가 몰래 수거해서 혁명의 기념품으로 팔았다. 그 시대 파리가 어떤 분위기였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다.

머리카락을 자르기 직전의 마리 앙투아네트
머리카락을 자르기 직전의 마리 앙투아네트, 창백해진 금발 머리카락

나는 끝까지 왕비다

머리카락을 자른 뒤 그녀는 감옥에서 줄곧 입고 있던 검은 상복을 벗었다. 대신 미리 챙겨둔 흰색 면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아무렇게나 옷을 고른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왕실 전통에서 왕비의 장례 색은 흰색이다. 처형대에 오르는 날 흰 드레스를 입은 건 “나는 끝까지 왕비다”라는 선언이었다. 혁명 정부가 그녀를 ‘시민 카페’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과 정반대의 태도다.

시민 카페혁명 정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재판하면서 그녀를 ‘시민 카페(Citoyenne Capet)’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시민(Citoyenne)’은 혁명 이후 귀족 칭호를 폐지하면서 모든 사람을 부르게 된 호칭이다. ‘카페(Capet)’는 루이 16세의 왕조 성씨. 왕비도, 왕후도 아닌 ‘카페 씨네 아내’로 격하시킨 것이다. 혁명 재판소는 그녀를 이 이름으로 기소했고, 사형 판결문에도 이 이름이 적혔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경비병이 내내 지켜봤다. 그녀는 시녀의 몸을 가림막 삼아 맨살을 숨기며 천천히 갈아입었다. 감옥 안에서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사생활이었다.

감방에서 흰 드레스로 갈아입는 마리
감방에서 흰 드레스로 갈아입는 마리 앙투아네트

마차는 없었다

오전 11시쯤, 감방 밖으로 나오면서 그녀는 자신을 지키던 경비병에게 짧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예의였다.

건물 밖에 마차는 없었다. 대신 나무 수레가 기다리고 있었다. 탕브르, 혁명 정부가 사형수를 처형장으로 실어 나르는 짐수레다. 덮개도 없고, 등받이도 없다. 두 마리 말이 끄는 이 수레에 손이 묶인 채 올라타야 했다.

이 수레 배정은 우연이 아니었다. 혁명 정부는 루이 16세를 처형할 때는 덮개 있는 마차를 썼다. 그녀에게는 짐수레를 배정했다. 의도적인 모욕이었다.

죄수용 수레를 타고 처형장으로
파리 돌길을 지나는 죄수용 수레 위의 마리 앙투아네트

저주와 침묵 사이

수레가 파리 시내를 통과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길 양쪽에 군중이 늘어서 있었다.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녀를 보러 나온 것이었다.

그 군중 속 어딘가, 한 창가에서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스케치를 했다. 다비드는 당시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가 빠르게 그린 그녀의 옆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서른일곱 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얼굴이다. 뼈가 불거진 노파에 가깝다. 다비드는 감정 없이 보이는 대로 그렸을 뿐인데, 오히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그녀가 얼마나 혹독하게 버텨왔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스케치는 1793년 10월 16일 당일의 1차 사료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다비드의 스케치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는 혁명기의 대표 화가이자 열렬한 혁명 지지자였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지나가는 순간 창가에서 그녀의 옆모습을 간단한 선으로 스케치했다. 지금 루브르에 소장된 이 그림은 그녀가 단두대로 가는 마지막 두 시간의 가장 정확한 시각적 기록이다. 그림 속의 그녀는 37세가 아니라 60세에 가까워 보인다.
처형 당일 마리 앙투아네트의 옆모습
처형 당일 수레 위의 마리 앙투아네트 옆모습 — 37세이나 노파처럼 야윈 얼굴

그녀의 마지막 장소

오전 11시 정각, 수레가 콩코드 광장에 도착했다. 당시 이름은 혁명 광장이었다. 수만 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고, 광장 한가운데 단두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수레에서 내렸다. 비틀거리지 않았다.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단두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나무 계단 앞에 섰다.

여기서 끊는다.

그녀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게 됐는지가 진짜 이야기다. 모든 건 스물세 해 전, 열네 살 소녀가 알프스를 넘는 것에서 시작됐다.

멀리서 본 콩코드 광장과 단두대 실루엣
멀리서 본 콩코드 광장과 단두대 실루엣

사료 노트

  • 마지막 편지: 원본은 파리 국립고문서관(Archives Nationales) 소장. 1816년 루이 18세가 처음 공개했다.
  • 다비드의 스케치: 루브르 박물관 소장. 1793년 10월 16일 당일 작.
  • 수레·흰 드레스·머리 자르기: 당시 형 집행인 샤를앙리 상송의 회고록과 Fraser (2001)에 근거.
  • “미안합니다” 발언: 계단에서 형리의 발을 밟고 한 말. 상송의 회고에 근거. 이 편에서는 다루지 않으며 6편에서 다룬다.
  • 머리가 희어진 것: 콩시에르주리 수감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사형 선고 직후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희어졌다는 속설은 과장이다.
출처

이미지 출처

생성형 이미지: 본문에 사용한 생성형 이미지는 Google Gemini로 제작했다.

본문 출처

Antonia Fraser, Marie Antoinette: The Journey (Anchor Books, 2001)

Stefan Zweig,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1932)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편지 원본 (Archives Nationales, Paris)

Charles-Henri Sanson, Memoirs of the Sansons (영역본,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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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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