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마리 앙투아네트 · 1편

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1) 수레 위의 아침

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1) 수레 위의 아침

나는 끝까지 왕비다

머리카락을 자른 뒤 그녀는 감옥에서 줄곧 입고 있던 검은 상복을 벗었다. 대신 미리 챙겨둔 흰색 면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아무렇게나 옷을 고른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왕실 전통에서 왕비의 장례 색은 흰색이다. 처형대에 오르는 날 흰 드레스를 입은 건 “나는 끝까지 왕비다”라는 선언이었다. 혁명 정부가 그녀를 ‘시민 카페’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과 정반대의 태도다.

시민 카페혁명 정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재판하면서 그녀를 ‘시민 카페(Citoyenne Capet)’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시민(Citoyenne)’은 혁명 이후 귀족 칭호를 폐지하면서 모든 사람을 부르게 된 호칭이다. ‘카페(Capet)’는 루이 16세의 왕조 성씨. 왕비도, 왕후도 아닌 ‘카페 씨네 아내’로 격하시킨 것이다. 혁명 재판소는 그녀를 이 이름으로 기소했고, 사형 판결문에도 이 이름이 적혔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경비병이 내내 지켜봤다. 그녀는 시녀의 몸을 가림막 삼아 맨살을 숨기며 천천히 갈아입었다. 감옥 안에서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사생활이었다.

감방에서 흰 드레스로 갈아입는 마리
감방에서 흰 드레스로 갈아입는 마리 앙투아네트

마차는 없었다

오전 11시쯤, 감방 밖으로 나오면서 그녀는 자신을 지키던 경비병에게 짧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예의였다.

건물 밖에 마차는 없었다. 대신 나무 수레가 기다리고 있었다. 탕브르, 혁명 정부가 사형수를 처형장으로 실어 나르는 짐수레다. 덮개도 없고, 등받이도 없다. 두 마리 말이 끄는 이 수레에 손이 묶인 채 올라타야 했다.

이 수레 배정은 우연이 아니었다. 혁명 정부는 루이 16세를 처형할 때는 덮개 있는 마차를 썼다. 그녀에게는 짐수레를 배정했다. 의도적인 모욕이었다.

죄수용 수레를 타고 처형장으로
파리 돌길을 지나는 죄수용 수레 위의 마리 앙투아네트

저주와 침묵 사이

수레가 파리 시내를 통과하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길 양쪽에 군중이 늘어서 있었다.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녀를 보러 나온 것이었다.

그 군중 속 어딘가, 한 창가에서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스케치를 했다. 다비드는 당시 프랑스 혁명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화가였다. 그가 빠르게 그린 그녀의 옆모습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서른일곱 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얼굴이다. 뼈가 불거진 노파에 가깝다. 다비드는 감정 없이 보이는 대로 그렸을 뿐인데, 오히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그녀가 얼마나 혹독하게 버텨왔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스케치는 1793년 10월 16일 당일의 1차 사료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다비드의 스케치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는 혁명기의 대표 화가이자 열렬한 혁명 지지자였다.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지나가는 순간 창가에서 그녀의 옆모습을 간단한 선으로 스케치했다. 지금 루브르에 소장된 이 그림은 그녀가 단두대로 가는 마지막 두 시간의 가장 정확한 시각적 기록이다. 그림 속의 그녀는 37세가 아니라 60세에 가까워 보인다.
처형 당일 마리 앙투아네트의 옆모습
처형 당일 수레 위의 마리 앙투아네트 옆모습 — 37세이나 노파처럼 야윈 얼굴

그녀의 마지막 장소

오전 11시 정각, 수레가 콩코드 광장에 도착했다. 당시 이름은 혁명 광장이었다. 수만 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고, 광장 한가운데 단두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수레에서 내렸다. 비틀거리지 않았다.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단두대로 이어지는 가파른 나무 계단 앞에 섰다.

여기서 끊는다.

그녀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게 됐는지가 진짜 이야기다. 모든 건 스물세 해 전, 열네 살 소녀가 알프스를 넘는 것에서 시작됐다.

멀리서 본 콩코드 광장과 단두대 실루엣
멀리서 본 콩코드 광장과 단두대 실루엣

사료 노트

  • 마지막 편지: 원본은 파리 국립고문서관(Archives Nationales) 소장. 1816년 루이 18세가 처음 공개했다.
  • 다비드의 스케치: 루브르 박물관 소장. 1793년 10월 16일 당일 작.
  • 수레·흰 드레스·머리 자르기: 당시 형 집행인 샤를앙리 상송의 회고록과 Fraser (2001)에 근거.
  • “미안합니다” 발언: 계단에서 형리의 발을 밟고 한 말. 상송의 회고에 근거. 이 편에서는 다루지 않으며 6편에서 다룬다.
  • 머리가 희어진 것: 콩시에르주리 수감 기간 동안 점진적으로 일어났다. 사형 선고 직후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희어졌다는 속설은 과장이다.
출처

이미지 출처

생성형 이미지: 본문에 사용한 생성형 이미지는 Google Gemini로 제작했다.

본문 출처

Antonia Fraser, Marie Antoinette: The Journey (Anchor Books, 2001)

Stefan Zweig,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 (1932)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편지 원본 (Archives Nationales, Paris)

Charles-Henri Sanson, Memoirs of the Sansons (영역본, 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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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죽인 여자 — 마리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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