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4월 30일, 예카테린부르크 역 플랫폼. 기차에서 내린 니콜라이 2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랄 지역 특유의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그를 맞았다. 알렉산드라와 딸 마리아가 뒤를 따라 내렸다. 나머지 자녀들과 수행원들은 2주 뒤에야 합류할 것이었다.
퇴위 이후 이미 세 번의 이감을 겪은 그들이었다. 알렉산드르 궁전에서 시작해 시베리아 토볼스크를 거쳐, 이제 우랄의 공업 도시 깊숙이. 기차가 멈출 때마다 삶의 반경이 좁아졌고, 자유는 한 뼘씩 더 멀어졌다.
그들은 이 역이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통제된 하루
화장실을 쓰려면 경비병에게 종을 쳐서 허락을 받아야 했다. 경비병이 동행하여 문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황제는 볼일을 보았다. 유럽 전체를 호령하던 제국의 군주가, 화장실 하나를 혼자 쓸 권리가 없었다.
식사는 시내 소비에트 식당에서 배달되었다. 검은 빵과 메밀, 감자. 그나마도 자주 지연됐다. 대관식 만찬에서 트러플을 곁들인 요리를 먹던 시절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 같았다.
경비병들은 황실 짐을 무단으로 뒤져 물건을 훔쳤다. 황후의 가방을 억지로 빼앗기도 했다. 벽에는 라스푸틴과 황후를 묘사한 외설적인 그림과 조롱하는 문구가 가득했다. 그리고 지하실 벽에는, 독일 시인 하이네의 시 구절을 변형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 지식 계층의 대원이 남긴 저주였다. 니콜라이는 그 문구를 읽었을까. 읽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기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니콜라이는 묵묵히 읽었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성서. 매일 일기를 썼다. 처형 나흘 전인 7월 13일의 기록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그렇게 쓴 것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그 담담함은 어떤 공포보다 더 오래 남는다.
알렉산드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건강이 악화되어 휠체어에 의존했고, 경비병들의 무례함에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침묵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러시아에 온 첫날부터 이방인이었던 그녀에게, 신앙만이 유일한 피난처였다.
네 딸들은 병든 알렉세이를 간호하고 부족한 옷을 수선하며 일상을 유지하려 했다. 올가는 창가에 앉아 글을 썼다. 타티아나는 어머니를 대신해 식사를 챙겼다. 아나스타샤는 반려견 지미를 끌어안고 소리를 죽여 웃었다. 마리아는 경비병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으려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아들의 고통
이감 과정에서 알렉세이는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졌다. 무릎에 심각한 내출혈이 발생했다. 혈우병 환자에게 내출혈은 외부 상처보다 훨씬 위험하다. 피가 관절에 차오르면 극심한 고통이 뒤따르고, 오래되면 관절이 굳어간다.
열세 살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화장실에 가야 할 때마다 직접 두 팔로 안아 들어 운반했다. 황제가 쓰러진 황태자를 안은 채 경비병의 허락을 기다리는 장면은, 그 어떤 설명보다 강렬하게 그들의 처지를 보여주었다.
주치의 예브게니 보트킨은 황태자를 간호하며 볼셰비키와의 의사소통을 도맡았다. 그는 황실을 떠날 수 있었다. 몇 차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남기를 선택했다.

유로프스키
1918년 7월 4일, 경비대장이 전격 교체되었다.
기존 경비대장 아브데예프는 기강 해이와 황실 내통 의혹으로 해임되었다. 그 자리에 앉은 것은 야코프 유로프스키였다. 체카 — 볼셰비키의 비밀경찰 — 출신의 이 남자는 냉혹하고 유능했다. 부임 첫날, 기존 경비병들을 외부 보초로 밀어내고 핵심 경비를 정예 대원들과 라트비아 용병들로 완전히 재편했다.
황실 가족은 유로프스키의 부임을 일기에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임무를 위해 왔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유로프스키는 질서를 잡고 식사를 개선하고 경비를 정비했다. 겉으로는 이전보다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바로 유로프스키가 원한 것이었다 — 마지막 날까지 의심을 품지 않도록.

모스크바의 계산
7월이 되자 백군의 진격이 빨라졌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시베리아 철도를 따라 동쪽에서 몰려왔고, 예카테린부르크까지의 거리는 날마다 좁혀졌다.
모스크바의 볼셰비키 지도부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했다. 황실 일가가 백군에게 구출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념과 목적이 뿔뿔이 흩어져 있던 반혁명 세력 — 왕당파, 우파, 멘셰비키 — 을 하나로 묶을 살아있는 깃발. 니콜라이 2세의 이름 하나가 내전의 판세를 뒤흔들 수 있었다.
레닌의 결론은 명확했다. 적에게 어떠한 상징적 구심점도 남겨두지 않는다. 처형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다.
7월 16일, 우랄 소비에트 집행위원회는 처형 명령을 유로프스키에게 하달했다. 유로프스키는 그날 오전, 황실의 주방 보조 소년 레오니드 세드네프를 먼저 저택 밖으로 불러냈다. 삼촌을 만나게 해준다는 이유로. 소년의 삼촌은 이미 체카에 의해 살해된 뒤였다.
알렉세이의 유일한 또래 친구였던 열다섯 살 소년이 갑자기 사라지자, 가족들은 불안해했다. 보트킨이 유로프스키에게 물었다. 유로프스키는 안심시키는 답변을 내놓았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7월 16일의 밤
저녁, 황실 가족은 평소처럼 식사를 마쳤다. 니콜라이는 알렉산드라와 카드 게임을 했다. 자정 무렵 잠자리에 들었다. 이것이 그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식사였고, 마지막 수면이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밤 11시, 유로프스키는 처형대원들을 소집하고 12정의 권총을 분배했다. 각자 사살할 대상을 지정했다.
새벽 1시 30분, 시신을 운반할 트럭이 도착했다.
유로프스키는 주치의 보트킨을 깨웠다.
“백군이 진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족들을 깨워 지하실로 내려오십시오.”
보트킨은 의심 없이 방을 나갔다. 잠에서 깬 일가는 세수를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며, 평온하게. 니콜라이는 걷지 못하는 알렉세이를 두 팔로 안아 들었다.
11명의 일행은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출처
본문 출처
야코프 유로프스키, 비망록 (Yurovsky’s Note, 1920년)
로버트 K. 매시, 『로마노프: 황조의 최후』 (Robert K. Massie, The Romanovs: The Final Chapter, 1995)
올랜도 파이지스, 『인민의 비극: 러시아 혁명사 1891–1924』 (Orlando Figes, A People’s Tragedy, 1996)
헬렌 라파포트, 『로마노프 자매들』 (Helen Rappaport, The Romanov Sisters, 2014)
니콜라이 소콜로프, 『황실 가족의 살해』 (Nikolai Sokolov, The Murder of the Tsar’s Family, 1924)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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