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야마토, 제국을 싣고 가라앉다 (1) 괴물은 어떻게 태어났나

1937년 11월, 구레 해군공창의 한 도크에서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배를 만든다는 것은 보통 점점 더 드러나는 일인데, 이 배는 반대로 점점 더 철저히 가려졌다. 후일 설계에 참여했던 마쓰모토 기타로의 회고에 따르면, 구레의 건조 도크는 이 거대한 선체를 띄우기 위해 약 1미터 더 깊어졌고, 도크 끝 부분의 약 4분의 1은 인근 높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지붕으로 가려졌다.

비밀 도크에서 태어나는 야마토
1937년 구레 해군공창의 비밀 도크에서 건조가 시작되는 야마토를 재구성한 상상도. 이 배는 세상에 드러나며 태어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가려지며 태어난 전함이었다.
그 배의 이름은 일본인들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 이름은 야마토(大和)였다.

야마토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세계 최대의 전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이 스스로의 열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낸 배로 보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미국과 같은 속도로 배를 찍어낼 수는 없으니, 대신 미국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한 척을 만들겠다는 발상. 야마토는 그런 불안, 자존심, 그리고 시대착오가 한꺼번에 응고된 철덩어리였다.

야마토는 강해서 태어난 배가 아니라, 미국의 생산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초조함이 낳은 괴물이었다.
구레 해군공창에서 막바지 공사 중인 야마토
1941년 9월 20일, 구레 해군기지에서 의장 공사 막바지에 들어간 야마토. 이 거대한 선체는 탄생부터 극도의 비밀 속에 관리되었다. © Wikimedia Commons /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NH 63433

최강함이 아닌 열세의 산물

야마토의 출발점은 자신감이 아니라 열등감이었다. 일본 해군은 미국과 장기전으로 가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1953년 미 해군 전문지 Proceedings에 실린 마쓰모토 기타로와 지하야 마사타카의 회고에 따르면, 일본 해군 전략가들은 산업력과 경제력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보았고, 그 열세를 만회할 거의 유일한 방법을 한 척 한 척의 성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에서 찾았다. 미국이 몇 년 안에 따라 만들 수 없는 초거대 전함, 그것이 야마토 구상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설계 사상부터 비정상이었다. 주포는 당시 기준으로도 비현실적인 18인치급, 즉 45구경 46센티 포를 3연장 3기 9문. 배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한계를 넘겨, 미국이 같은 체급의 전함을 양대양에 동시에 굴리기 어렵게 만들겠다는 계산까지 깔려 있었다. 바꿔 말하면, 야마토는 일본이 전쟁의 향방을 읽어서 만든 배가 아니라, 어떻게든 미국보다 큰 배를 만들려는 발상에서 나온 배였다.

왜 일본은 파나마 운하를 지나갈 수 없을 만큼 큰 배를 만들려고 했을까? 당시 미국 해군은 대서양과 태평양에 걸쳐 함대를 운용했고, 전쟁이 나면 신형 전함을 두 바다 사이에서 빠르게 돌려 쓸 수 있어야 했다. 문제는 운하였다. 파나마 운하의 옛 갑문은 가로 110피트, 약 33.5미터였고, 실제로 선체가 안전하게 드나들려면 폭을 그보다 더 좁은 약 106피트, 32.3미터 안팎에 맞춰야 했다. 그런데 야마토의 최대 폭은 38.9미터였다. 일본 해군은 미국이 비슷한 체급의 배를 만들더라도, 운하를 통한 이동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 크기를 그대로 따라오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파나마 운하의 위치
파나마 지협을 가로지르는 수로가 파나마 운하다. 당시 미국 전함이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를 오가려면 이 구간의 갑문 체계를 통과해야 했고, 그래서 운하 폭은 곧 전함 설계의 현실적인 상한선이 되었다. © Wikimedia Commons

강박은 숫자로도 보인다. 야마토 뮤지엄 공식 자료에 따르면, 야마토는 전장 263미터, 기준배수량 65,000톤, 최대속력 27.46노트, 주포 45구경 46센티 3연장 3기 9문을 갖췄다. 최종 출격 당시 승조원은 3,332명이었다. 오늘 우리가 야마토를 ‘거대했다’고 기억하는 건 단지 인상 비평이 아니다. 당시 기준으로 정말 지나치게 컸다.

야마토
전함 야마토의 체급과 존재감을 시각화한 상상도. 길이는 타이타닉에 육박했고, 폭과 화력은 당시 전함의 규격을 아득히 넘어섰다.

이 숫자들은 단순한 크기 자랑이 아니다. 전장 263미터는 타이타닉의 882.5피트, 약 269미터에 거의 맞먹는 길이였다. 하지만 폭은 더 극적이다. 타이타닉의 폭이 92.5피트, 약 28.2미터였던 데 비해 야마토는 38.9미터였다. 배수량이 크다는 것은 단지 배가 길다는 뜻이 아니라, 그 위에 두꺼운 장갑과 거대한 포탑, 더 무거운 포탄과 기계를 얹을 수 있다는 뜻이다. 최대속력 27.46노트는 오늘 기준으로는 폭발적인 숫자가 아니지만, 이만한 장갑전함으로서는 충분히 빠른 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46센티 주포는 당시 최신 전함들이 주로 썼던 16인치급 주포를 한 단계 넘어선 무기였다. 한마디로 야마토는 길이는 거대한 여객선에 가깝고, 폭과 화력은 기존 전함의 규격을 아득히 넘는 배였다.

설계실 안에서 길을 잃은 제국

야마토는 하루아침에 나온 배가 아니었다. 마쓰모토 기타로, 야마토 설계에 처음부터 참여했고 전후에 그 과정을 직접 회고한 일본 해군 기술장교의 글에 따르면, 일본 해군 군령부는 1934년 10월 처음으로 해군함정본부(Bureau of Naval Construction)에 18인치 포를 단 신형 전함 연구를 요청했다. 첫 번째 청사진은 1935년 3월에 나왔고, 최종안이 확정되기까지 23개의 설계안50개의 실험용 선형 모델이 검토되었다. 히로시마현 구레시에 있는 야마토 뮤지엄(구레시 해사역사과학관)은 마쓰모토 기타로를 두고 아예 “전함 야마토의 기본계획 전반에 종사한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지금 남아 있는 그의 자료만도 275점이다.

마쓰모토 기타로
전함 야마토 설계에 처음부터 참여했고, 전후에는 그 건조 과정을 직접 회고로 남긴 기술장교 마쓰모토 기타로의 상상도. 실존 초상을 확보하지 못해 생성형 이미지로 재구성했다.

야마토는 광기만으로 만들어진 배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분명 세계 최고 수준의 계산과 실험, 정교한 도면, 뛰어난 기술자들의 노동이 들어 있었다. 문제는 그 정교함이 잘못된 질문에 복무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떤 전쟁이 벌어질까?”가 아니라, “미국이 쉽게 흉내 내지 못할 더 큰 전함을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최종 설계안은 1937년 3월에 확정됐고, 그해 11월 구레 해군공창에서 본격 건조가 시작됐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뒤, 그 배는 자기 존재 이유를 시험해볼 기회조차 거의 얻지 못한다. 야마토의 비극은 침몰 순간이 아니라, 어쩌면 바로 이 설계실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비밀 설계실에서 태어난 야마토
수십 개의 설계안과 모형 실험 끝에 구체화된 야마토의 비밀 설계 과정을 재구성한 상상도. 이 배의 비극은 어쩌면 침몰이 아니라 바로 이 설계실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시험 항해 중인 야마토
1941년 10월 20일, 분고 해협 밖에서 기계 시험 항해 중인 야마토. 제원만 보면 상대가 없을 것 같은 최강의 전함처럼 보이지만, 이 배가 주역이 되었어야 할 전쟁의 문법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Wikimedia Commons / U.S. 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 NH 73092

전함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일본 해군 안에도 이미 다른 미래를 보는 사람이 있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1928년에는 항공모함 ‘아카기’ 함장을 지냈고, 1929년에는 해군항공본부 기술부문, 1934년에는 제1항공전대, 1936년부터는 해군차관을 거친 인물)는 전형적인 ‘전함의 사람’이 아니었다. 브리태니커와 미 해군 전문지 Proceedings의 정리를 보면, 그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해군 항공 부문에서 오래 일했고,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항공모함과 함재기가 전함보다 더 멀리, 더 먼저, 더 결정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브리태니커는 아예 그가 일본 해군을 ‘대구경 전함 중심’에서 ‘항공모함 중심’으로 돌려세운 인물이라고 요약한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항공모함과 함재기의 시대를 비교적 이르게 읽어낸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상상도. 실존 사진은 별도의 인물편에서 다루고, 본편에서는 생성형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야마모토는 뛰어난 군인이었고, 항공모함을 이용한 진주만 공습의 총지휘자가 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본 해군의 패착이 선명해진다. 일본 해군은 항공전의 시대를 몰랐던 조직이 아니었다. 알고도, 버리지 못했다. 항공모함의 시대가 오는 줄 알면서도, 거함거포의 신앙과 조직 관성, 그리고 상징정치의 유혹을 끝내 끊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가 야마토였다. 야마토는 진주만 공습 직후인 1941년 12월 16일 준공됐다. 가장 거대한 전함이 가장 화려하게 세상에 나온 시점이, 공교롭게도 전함의 시대가 이미 끝났음을 세계가 확인하던 순간과 거의 겹쳐 있었던 것이다. 야마토는 최신형 전함이었지만, 동시에 너무 늦게 태어난 전함이기도 했다.

철의 성, 너무 늦게 태어나다

야마토를 둘러싼 오래된 감탄은 대체로 숫자에 붙어 있다. 몇 톤이었는가, 몇 문이었는가, 얼마나 두꺼웠는가. 하지만 그 배를 조금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감탄 뒤에는 곧바로 몇 가지 의문이 따라붙는다.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배를 만들어야 했는가. 왜 이렇게까지 숨겨야 했는가. 왜 이렇게까지 많은 기술과 노동을,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믿음 하나에 쏟아부었는가.

나는 야마토를 일본 제국의 오만한 자신감보다는, 오히려 불안이 만든 기념비로 읽고 싶다. 자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 큰 무기를 원했고,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기에, 그렇기에 더욱 모른 척하고 최강의 상징에 매달렸다. 야마토는 그래서 ‘최강의 전함’이라기보다, 제국이 자기 몰락을 모른 척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가면에 가까웠다.

다음 편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렇게 태어난 배는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전쟁의 중심에 서지 못한다. 너무 귀해서 못 쓰는 사이, 전쟁은 이미 전함이 아니라 항공모함과 비행기가 결정하는 싸움이 되어 있었다. 야마토의 비극은 침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비극은, 처음부터 태어난 자리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출처

이미지 출처

`images/02-yamato-fitting-out.jpg`: [Wikimedia Commons – Japanese battleship Yamato fitting out at the Kure Naval Base, Japan, 20 September 1941 (NH 63433)](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apanese_battleship_Yamato_fitting_out_at_the_Kure_Naval_Base%2C_Japan%2C_20_September_1941_%28NH_63433%29.jpg)

`images/01-yamato-sea-trial.jpg`: [Wikimedia Commons – Japanese battleship Yamato running trials off Bungo Strait, 20 October 1941](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apanese_battleship_Yamato_running_trials_off_Bungo_Strait%2C_20_October_1941.jpg)

`images/wiki-commons_panama-canal-map-en.png`: [Wikimedia Commons – Panama Canal Map EN](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anama_Canal_Map_EN.png)

생성형 이미지: 본문에 사용한 생성형 이미지는 Google Gemini로 제작했다.

본문 출처

[대와 뮤지엄 – 숫자로 보는 전함 야마토](https://yamato-museum.com/yamato-data/)

전장, 배수량, 주포, 속력, 승조원 수, 준공일 확인

[대와 뮤지엄 – 마쓰모토 기타로 자료 공개](https://yamato-museum.com/info/%E6%9D%BE%E6%9C%AC%E5%96%9C%E5%A4%AA%E9%83%8E%E8%B3%87%E6%96%99%E3%81%AE%E5%85%AC%E9%96%8B%E3%81%AB%E3%81%A4%E3%81%84%E3%81%A6/)

마쓰모토 기타로가 전함 야마토 기본계획 전반에 종사했다는 점과 자료 275점 확인

[U.S. Naval Institute Proceedings – Design and Construction of the Yamato and Musashi](https://www.usni.org/magazines/proceedings/1953/october/design-and-construction-yamato-and-musashi)

18인치포 구상 배경, 파나마 운하 고려, 설계안 수, 실험 선형 수, 구레 도크 확장과 차폐 조치 확인

[Panama Canal Authority – Design Of The Locks](https://pancanal.com/en/design-of-the-locks/)

옛 파나마 운하 갑문 폭 110피트 확인

[Smithsonian Institution – The RMS Titanic](https://www.si.edu/spotlight/titanic)

타이타닉 길이 882.5피트, 폭 92.5피트 확인

[Britannica – Yamamoto Isoroku](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Yamamoto-Isoroku)

[Britannica – How did Yamamoto Isoroku change the world?](https://www.britannica.com/question/How-did-Yamamoto-Isoroku-change-the-world)

야마모토의 해군 항공 인식과 전함 중심 해군에서 항공모함 중심으로의 전환 관련 서술 확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