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에서 칼리가가 유리했던 이유
(1) 우수한 도로 인프라
로마 군인들은 (적어도 제국 영토 안에서는) 아래처럼 잘 닦인 길을 걸었다.

로마는 도로를 건설하는데 진심이었다. 이런 잘 닦인 도로를 걷는다면 굳이 발 전체를 보호하는 신발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접경지역 혹은 외국에서의 행군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만약 늪지대나 흙이 많은 지형에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아 되게 불편하다’ 하면서 싸웠겠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서기 117년~138년)의 로마 제국의 도로망이라고 한다. 유럽과 지중해를 혈관처럼 도로로 감은 모습이 충격적이다. 이들은 도로망이 가져다주는 ‘속도(!)’의 중요성을 알았다.

반면 이들의 주적이었던 켈트족은 이런 신발을 신었다. 쿠란(Cuaran, 그 쿠란 아님!)이라고 한다. 로마의 카르바티나와 비슷하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떠났을 때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병사들은 이 신발을 신고 전투에 나왔을 것이다. 이 시대 갈리아 지역은 상당히 척박했다고 한다. 이런 지형에서는 칼리가를 신으면 금방 발이 다칠 것이다. 켈트족은 자기 지형에 맞는 신발을, 로마군은 도로에 걸맞는 신발을 발전시켰다. 원정 시 불편함은 감수하더라도…
(2) 로마의 표준화 시스템
이게 무서운 점이다. 이 당시 로마는 제국 전역에 군수품을 생산, 보수하는 공방(Fabricae)을 운영했다. 병사들은 규격화된 신발을 보급받거나 월급으로 살 수 있었다.

만약 징이 떨어졌다? 공방에서 징만 새로 박으면 그만이었다. 켈트족이 신는 가죽신 같은 신발은 밑창이 떨어지면 새로 만들어야 했다. 로마는 군수품에 관한 한 전국 어디에서나 유지보수, 모듈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구 동성로 살로몬 매장에서 신발을 사고 명동 살로몬에서 AS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2000년전에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니.. 놀랍지 않은가?

첫 포스팅이었다. 요약하자면 로마 병사들은 칼리가라는 샌들을 신어서 무좀에 안 걸리고, 행군만으로 적에게 공포감을 선사했으며, 근접전에서는 쇠 박힌 신발로 상대 무릎을 차버릴 수(…) 있었다. 시스템이 뒷받침한건 훌륭한 도로 인프라와 전국에 설치된 공방 시스템이었다.
사실 글을 쓰면서 로마 제국의 전투 형태나 켈트족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이건 다음에 쓰기로.
로마는 대단한 제국이다. 샌들 하나로 로마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