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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병사들은 왜 샌들을 신었을까 · 2편

로마 병사들은 왜 샌들을 신었을까

(2) 도로와 표준화의 제국

로마 병사들은 왜 샌들을 신었을까 (2) 도로와 표준화의 제국

로마 제국에서 칼리가가 유리했던 이유

(1) 우수한 도로 인프라

로마 군인들은 (적어도 제국 영토 안에서는) 아래처럼 잘 닦인 길을 걸었다.

폼페이에 남아 있는 로마 거리 / 위키피디아

로마는 도로를 건설하는데 진심이었다. 이런 잘 닦인 도로를 걷는다면 굳이 발 전체를 보호하는 신발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접경지역 혹은 외국에서의 행군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만약 늪지대나 흙이 많은 지형에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아 되게 불편하다’ 하면서 싸웠겠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서기 117년~138년)의 로마 제국의 도로망이라고 한다. 유럽과 지중해를 혈관처럼 도로로 감은 모습이 충격적이다. 이들은 도로망이 가져다주는 ‘속도(!)’의 중요성을 알았다.

기원전 8~3세기 할슈타트 소금광산에서 출토된 켈트족의 신발 / 위키미디어 커먼스

반면 이들의 주적이었던 켈트족은 이런 신발을 신었다. 쿠란(Cuaran, 그 쿠란 아님!)이라고 한다. 로마의 카르바티나와 비슷하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을 떠났을 때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병사들은 이 신발을 신고 전투에 나왔을 것이다. 이 시대 갈리아 지역은 상당히 척박했다고 한다. 이런 지형에서는 칼리가를 신으면 금방 발이 다칠 것이다. 켈트족은 자기 지형에 맞는 신발을, 로마군은 도로에 걸맞는 신발을 발전시켰다. 원정 시 불편함은 감수하더라도…

(2) 로마의 표준화 시스템

이게 무서운 점이다. 이 당시 로마는 제국 전역에 군수품을 생산, 보수하는 공방(Fabricae)을 운영했다. 병사들은 규격화된 신발을 보급받거나 월급으로 살 수 있었다.

만약 징이 떨어졌다? 공방에서 징만 새로 박으면 그만이었다. 켈트족이 신는 가죽신 같은 신발은 밑창이 떨어지면 새로 만들어야 했다. 로마는 군수품에 관한 한 전국 어디에서나 유지보수, 모듈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구 동성로 살로몬 매장에서 신발을 사고 명동 살로몬에서 AS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2000년 전에 이런 시스템을 갖췄다니… 놀랍지 않은가?

첫 포스팅이었다. 요약하자면 로마 병사들은 칼리가라는 샌들을 신어서 무좀에 안 걸리고, 행군만으로 적에게 공포감을 선사했으며, 근접전에서는 쇠 박힌 신발로 상대 무릎을 차버릴 수(…) 있었다. 시스템이 뒷받침한 건 훌륭한 도로 인프라와 전국에 설치된 공방 시스템이었다.

사실 글을 쓰면서 로마 제국의 전투 형태나 켈트족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이건 다음에 쓰기로.

로마는 대단한 제국이다. 샌들 하나로 로마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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