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병사들은 왜 샌들을 신었을까? (1부)

로마라는 나라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탄생해서 395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 사후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476년)까지 따져보면 1,229년 동안 존속했었고 한때는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다.

정말 노른자위 땅은 다 차지했다. 중간에 흰 부분은 지중해 / 위키피디아

… 이런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 했을 뿐. 널리 알려진 대로 로마는 주변국들과 전쟁을 많이 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등… 전쟁을 병사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전쟁 또는 전투의 시작은 무엇일까? 바로 군장을 싸서 메고, 신발을 신고 작전지역으로 “걷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군은 좀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가 게임이나 영화를 통해서 접하는 로마 병사들은 전부 발가락이 훤히 보이는 샌들을 신고 있다.

생성한 그림이지만 고증 정말 잘했다

참 이상하다. 뭐가 이상하냐면, 샌들을 신은 것보다도 “저걸 신고 어떻게 행군을 하고 전투를 했지?”라고 내가 지금껏 의문을 가지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아무튼 로마 샌들(‘칼리가(Caligae)’라고 한다)에 대해서 알아본다.

칼리가를 복원한 레플리카 / trimontium

병사들만 칼리가를 신었을까? 그렇다. 당시 비전투 인원인 시민들(로마는 직업 군인 제도를 택했다)은 다른 신발은 신었다.

이건 칼케우스(Calceus)라고 한다. 로마 시민들의 정장 구두였다. 토가(Toga, 로마 시민권자만 입을 수 있는 반원형의 겉옷)를 입을 때 권장되는 외출용 신발이었다. 사진은 서기 37년경 제작된 티베리우스 황제 석상의 발 부분이다. (참고로 티베리우스 황제는 서기 37년에 죽었다. 아마 황제의 서거를 기념으로 제작되었겠지. 그 다음 즉위한 황제가 바로 그 유명한 폭군 ‘칼리굴라’다. 재밌게도 ‘칼리굴라’라는 별명 자체가 ‘작은 칼리가(꼬마 샌들)’라는 뜻이다.)

이거 말고도 ‘솔레아'(Solea)라는 실내용 슬리퍼, ‘카르바티나'(Carbatina)라는 서민과 노예의 신발도 있다. 솔레아는 사진을 구하기 어려운데 오늘날의 쪼리나 슬리퍼와 유사하다고 한다.

이건 카르바티나라고 해서 서민과 노예들이 많이 신었다고 한다. 복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통가죽 한 장을 오려서 끈으로 묶어 발 모양을 잡은, 말 그대로 ‘가죽 주머니’ 같은 신발이다.

이렇게 칼케우스, 솔레아, 카르바티나가 비전투 인원들이 신었던 신발들이다. 칼리가와 같은 형태의 신발은 군인들만 신었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가장 허술해 보이는 신발을 전투용으로 신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칼리가라는 신발 자체의 기능성, 두 번째는 ‘시스템 신봉자’인 로마 제국의 특수성 때문이다.

칼리가의 장점

(1) 압도적인 통기성

전투화를 오래 신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행군 후의 물집은 금방 낫는다. 그러나,,, 무좀은 오래 간다. 나 역시 군대 시절 무좀에 걸려 지금까지도 여름 며칠은 고생하고 있다. (결코 씻지 않아서 걸리는 병이 아니다 무좀은!)

칼리가는 그런 걱정이 없다. 조리나 샌들을 신고 행군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신발은 오래 신으면 무릎 관절이 아플지언정 바람이 안 통해서 걸리는 질병은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행군은 전투화를 신나 샌들을 신나 똑같이 끔찍하다. 사진은 내가 나온 칠성부대 / 칠성전우회

(2) 징의 위력

1) 공포의 소리

위에 칼리가 복원 사진을 다시 보자. 바닥에 쇠못(징)이 박혀있다. 이 징이 박힌 샌들을 신고 수천 수만의 대군이 잘 닦인 돌길 위에서 발을 맞춰 걷는다고 상상해 보라. 엄청난 소리가 들리지 않겠는가? 생각만해도 공포다. 사람의 감각기관 중 청각을 통해 엄청난 공포심을 주는 것이다. 전투를 개시하기도 전에.

사실 규칙적인 소리보다 불규칙적인 소리가 더욱 공포스럽다. 사람은 예측불가능, 불규칙 이런걸 매우 싫어한다. 징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규칙한 정도도 심해졌을 것이다 – 엔트로피의 법칙

칼케우스나 카르바티나 같은 부드러운 신발은 이런 징을 박을 수가 없다. 징을 박으려면 칼리가나 일본의 나막신처럼 밑창이 딱딱하고 곧게 펴져있어야 한다. 그럼 징은 전투에서는 어떻게 활용되었을까?

2) 징 박힌 샌들로 오블리킥

저작권 시비 피하려고 AI로 만들었는데 원본보다 더 좋다 제미나이 乃

로마 보병의 표준 무장을 보자. 이들은 왼손에 스쿠툼(Scutum)이라는 대형 사각형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필룸(Pilum)이라는 투창을 들었다. 적이 10미터 이내로 접근하면 일단 필룸부터 냅다 던지고(이 단계에서 상대 방패를 뚫고 절명시키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들면 이 병사는 이미 1인분을 한 것이다) 오른쪽 허리에 찬 글라디우스를 뽑았을 것이다. 접근해서 검으로 근접전을 벌이려고 하는데,,, 이때 적이 방패를 굳게 닫고 버틴다면? 칼을 휘두를 공간도 없을 만큼 밀착했다면?

저렇게 무릎을 외회전한 채로 찰 수도 있고 내외전한 채로도 찰 수 있다. 파괴력은 내회전 킥이 더 강할 것이다. 그림처럼 슬개골 윗부분을 차야 한다. 역시 존 존스 오블리킥의 장인답게 잘 찬다. 제대로 차면 무릎이 뒤로 꺾이지 않게 잡고 있는 십자인대가 끊어지면서 무릎이 뒤로 꺾이고 전투불능 상태에 빠진다. 그나저나 제미나이 乃. 원본에서 맞는 사람은 앤더슨 실바가 아니다.

바로 이거다. 방패는 주로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을 방어하기 위해 든다. 사람의 본능상 그렇다. 권투의 가드도 마찬가지고. 하반신, 특히 무릎 아래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난전 중 나와 상대방 모두 근접무기를 휘두르기 어려울 때는 이런 식으로 징 박힌 발로 킥을 하는 것이다. 격투 지능이 뛰어난 병사라면 존 존스처럼 무릎 또는 무릎 바로 위를 노렸겠지. 맨발로 맞아도 무릎 인대가 끊어질 판인데, 철제 징이 박힌 신발로 무릎 관절을 밟힌다면? 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전투 불능이 된다. 칼리가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무기였을 것이다.

요약하면 칼리가의 장점은 2가지다. 1) 압도적인 통기성으로 인한 질병 예방 2) 오블리킥(…)의 위력 증대…라고 쓰고 싶지만 조금 수준 있게 쓰자면 ‘근접전에서의 킥의 위력 증대로 인한 근접 전투력 강화!’

2부에서는 로마 제국 차원에서 칼리가가 유리했던 이유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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