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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야마토, 제국을 싣고 가라앉다 (5) 야마토를 만든 사람, 타고 죽은 사람, 남긴 사람

우리는 지금까지 야마토의 생애를 따라왔다. 어떻게 태어났는지, 왜 시대를 잘못 만났는지, 어떻게 죽으러 갔는지, 왜 침몰 뒤에 더 큰 이름이 되었는지를 보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면, 야마토는 너무 쉽게 다시 하나의 상징이 되고 만다. 거대한 배, 거대한 포, 거대한 폭발. 그것만으로는 이 전함이 왜 그렇게 오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야마토는 철과 … 더 읽기

전함 야마토, 제국을 싣고 가라앉다 (4) 침몰, 천황, 어머니

1945년 4월 7일 정오 무렵, 야마토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지만 이미 패배한 배였다. 전날 밤 분고 수로를 빠져나온 순간부터 위치가 노출됐고, 아침이 되자 미군 정찰기와 항공모함 항공대가 그 위를 맴돌았다. 3편에서 보았듯이 이 항해는 비밀 병기의 출격이 아니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는 사실까지 모두가 아는 항해였다. 마지막 항해 분고 수로를 빠져나온 뒤 남쪽으로 … 더 읽기

전함 야마토, 제국을 싣고 가라앉다 (3) 죽으러 가는 배

본토 앞까지 밀려온 전쟁 1945년 봄, 일본은 이미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1942년 미드웨이에서 항공모함 전력을 잃은 뒤, 일본 해군은 태평양의 주도권을 서서히 내줬다. 1943년에는 과달카날을 포기했고, 1944년에는 사이판과 티니안, 괌을 잃었다. 그 결과 미국의 B-29 폭격기는 일본 본토를 직접 때릴 수 있게 됐다. 같은 해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남아 있던 … 더 읽기

전함 야마토, 제국을 싣고 가라앉다 (2) 괴물은 왜 싸우지 못했나

1941년 12월 16일, 전함 야마토(大和)는 공식 취역했다. 많은 사람은 이 날짜를 ‘세계 최강 전함이 바다에 나온 날’로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날의 공기는 전혀 달랐다. 불과 아흐레 전인 12월 7일, 일본 항공대는 진주만에서 미국 전함들을 공중에서 두들겼다. 그리고 엿새 전인 12월 10일, 영국의 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순양전함 리펄스는 말레이 해역에서 일본군 항공기 공격만으로 격침됐다. … 더 읽기

전함 야마토, 제국을 싣고 가라앉다 (1) 괴물은 어떻게 태어났나

1937년 11월, 구레 해군공창의 한 도크에서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배를 만든다는 것은 보통 점점 더 드러나는 일인데, 이 배는 반대로 점점 더 철저히 가려졌다. 후일 설계에 참여했던 마쓰모토 기타로의 회고에 따르면, 구레의 건조 도크는 이 거대한 선체를 띄우기 위해 약 1미터 더 깊어졌고, 도크 끝 부분의 약 4분의 1은 인근 높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지붕으로 … 더 읽기

에도의 상인들, 일본을 만들다 (8) – 연기, 결단, 해체

근대화의 그림자 벳시 동광의 근대화는 성공했다.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생산이 늘어날수록, 굴뚝에서 나오는 것도 늘어났다. 아황산가스(SO₂). 구리를 제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 기체는, 대기 중의 수분과 결합하면 황산이 된다. 벳시 인근의 산과 논밭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농작물이 말랐다. 산림이 민둥산으로 변했다. (벳시 아황산가스 피해 사진은 스미토모 아카이브에 있는데 배포가 불가능한 저작권이 걸려있다.) 생성형 이미지(Google Gemini). … 더 읽기

에도의 상인들, 일본을 만들다 (7) – 논리가 칼을 이긴 날

177년의 평온 1691년 벳시 동광을 열고 난 뒤, 스미토모는 묵묵히 산을 팠다. 에도와 오사카의 상인들이 쌀 투기와 환율 변동에 베팅하며 벼락부자가 되고 또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동안에도, 스미토모는 요동치지 않았다. 깊은 산속에서 1만 명의 광산 공동체를 먹여 살리며, 쏟아지는 지하수와 싸우고 구리를 캐낼 뿐이었다. 그렇게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광산을 지켜온 시간. 하지만 막부 말기라는 시대의 … 더 읽기

에도의 상인들, 일본을 만들다 (4) — 역사상 가장 빠른 베팅

미노무라 입사 장면

미쓰이, 파산 직전까지 몰리다 환전상으로 승승장구하던 미노무라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866년이었다.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에서 비롯됐다. 당시 막부의 재정은 파탄 직전이었다. 흑선이 온 지 13년, 개항 이후 서양 물자를 사들이느라 막부의 금고는 비어갔다. 급해진 막부는 미쓰이에게 거액을 요구했다. 150만 료. 쉽게 말해, 그냥 내놓으라는 거였다. 미쓰이 가문에 비상이 걸렸다. 그때 누군가 한 이름을 떠올렸다. 막부 … 더 읽기

에도의 상인들, 일본을 만들다 (2) — 낭인의 후예

미쓰이 가문의 시작: 도주한 사무라이의 초라한 변신 미쓰이 제국의 시작은 화려한 영웅담이 아니라, 한 몰락한 무사의 조용한 변신이었다. 미쓰이 가문의 시조(성씨가 아니라 장사꾼으로서의 정체성을 의미한다면 시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미쓰이 다카야쓰는 오미(近江, 지금의 시가현) 출신의 하급 무사였다. 그는 칼을 버리고 이세 지방(지금의 미에현) 마쓰사카로 내려가 술과 된장을 파는 상인으로 새 출발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상인 … 더 읽기

에도의 상인들, 일본을 만들다 (1) — 사무라이의 종말, 상인의 시대

< 1878년 도쿄, 육군성 군무국 > 세이난 전쟁에서 사무라이들이 굴복하다 1877년 일본. 메이지 정부에 불만을 품은 사무라이들이 가고시마에서 봉기했다. “사이고 선생님의 충의를 전달하기 위해 상경한다”—이것이 그들의 명분이었다. 세이난 전쟁이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반란군 3만 명은 근대식 총포로 무장한 정부군에 밀려 8개월간 후퇴를 거듭했고, 9월 24일 시로야마에서 최후를 맞았다. 사이고는 할복했다. 일본 역사상 마지막 사무라이 반란은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