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이, 파산 직전까지 몰리다
환전상으로 승승장구하던 미노무라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866년이었다.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에서 비롯됐다.
당시 막부의 재정은 파탄 직전이었다. 흑선이 온 지 13년, 개항 이후 서양 물자를 사들이느라 막부의 금고는 비어갔다. 급해진 막부는 미쓰이에게 거액을 요구했다. 150만 료. 쉽게 말해, 그냥 내놓으라는 거였다.
미쓰이 가문에 비상이 걸렸다. 그때 누군가 한 이름을 떠올렸다. 막부 관리 오구리 타다마사와 인맥이 있는, 그 똑똑한 환전상.
“오구리 어른께 한번 말씀을 넣어봐 주시겠소?”
미노무라는 해냈다. 정확히 얼마를 깎아냈는지는 기록마다 다르지만, 중요한 건 이 사건이 미쓰이 가문에 미노무라의 이름을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1866년, 미노무라는 미쓰이에 입사한다. 나이 45세. 인생의 두 번째 막이 오른 것이다.
어용상인의 딜레마
미쓰이는 어용상인(御用商人)이었다. 쇼군이 부르면 달려가고, 막부가 돈을 빌리면 빌려주는, 권력의 그늘에서 먹고 사는 존재. 1691년부터 177년간 이어온 관계였다.
문제는 이 권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2편에서 다뤘던 대정봉환,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막부는 사실상 끝났다. 보신전쟁이 시작됐다.
미쓰이 입장에서는 공황 그 자체였다. 지금껏 모신 주인이 지면, 우리는? 천황파는 이미 막부에 협력해온 상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미쓰이 가문 내부에서 일부는 교토의 비밀 창고에 재산을 숨겼다. 일부는 도주를 준비했다.
그때 미노무라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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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1월, 미노무라는 혼자 조용히 움직였다. 그가 접촉한 상대는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조슈 번 출신의 유신 지사로, 훗날 메이지 정부 초대 재무장관이 될 인물이었다.
거래는 단순했다. “당신들이 이기면, 미쓰이가 새 정부의 금고지기가 되겠다. 지금 당장 군자금이 필요하지 않소?”
미노무라는 미쓰이의 돈으로 신정부 측 군자금을 댔다. 말하자면, 적국에 군비를 지원한 것이다. 막부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미쓰이는 그 자리에서 멸문이었다.
(이런 걸 “담력 있는 투자”라고 해야 할지, “줄타기 서커스”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줄 위에서 미노무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해 5월, 신정부군이 에도에 무혈입성했다.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신정부는 약속을 지켰다. 미쓰이는 새 정부의 공식 어용 환전상이 되었다. 177년 묵은 막부 어용상인 간판이 내려지고, 새 간판이 걸렸다.
오구리, 그 남자의 최후
미노무라가 새 시대의 파도를 타고 있을 때, 옛 상관집 도련님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구리 타다마사. 미노무라가 하인으로 들어갔던 그 집의 아들. 형제처럼 지냈던 마타이치 도련님. 그는 막부의 마지막 관료로서 끝까지 저항을 주장했고, 막부가 무너지자 군마현의 산골 마을로 낙향했다. 농사를 짓겠다고 했다.
신정부는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1868년 4월, 신정부군이 마을로 들이닥쳤다.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오구리는 체포됐다. 재판은 없었다. 며칠 후, 강변에서 참수됐다. 나이 41세. 부하 세 명과 함께였다. 사무라이에게 할복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으로 죽은 막부 고위 관료 중 재판 없이 처형된 것은 오구리가 유일하다고 한다.
(미노무라와 오구리는 난세를 함께 보낸 사람들이다. 한 명은 재빠르게 시대를 읽고 살아남았고, 한 명은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다 죽었다. 어느 쪽이 옳은지 역사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됐을 뿐이다.)
미노무라의 다음 수
새 시대의 게임은 빠르게 돌아갔다. 1873년, 그는 미쓰이 본사를 교토에서 도쿄로 이전시켰다. 창업 이래 교토를 중심으로 운영해온 미쓰이 가문으로서는 엄청난 결단이었다. 반발이 있었지만 밀어붙였다. 수도가 도쿄인 이상, 정부 돈은 도쿄에 있다.
1875년, 이노우에 카오루가 운영하던 무역회사를 인수해 미쓰이 물산(三井物産)을 설립했다. 훗날 일본 최대 종합상사의 출발점이다.
1876년, 미쓰이 은행(三井銀行)이 문을 열었다. 일본 최초의 민간은행이었다. 자본금 200만 엔.
고아 출신의 환전상이 일본 최초의 민간은행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877년, 미노무라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그가 남긴 미쓰이는 이후 일본 경제를 100년 이상 지배하는 거대 재벌로 성장한다.

